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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 기자와 통화를 마치고 대표실 소파에 잠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쉬고 있으려니 슬쩍 대표실 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괜찮아. 안 자니까 들어와.” 안형석이었다. 내가 잠들었을까봐 조심스레 문을 열어 본 것.
“그것 때문에 어제 사무실에 남았던 거야?” 안형석도 어제 투자 제안서를 돌리느라 야근을 했었다. 그가 같이 나가자고 했지만 나는 아직 할 일이 있다며 남았었고.
“어. 그 새끼가 뭔 짓을 할지 빤히 아니까. 그게 딱 들어맞았지.” 어제 CI 투자자문 측에서 나와 주하율을 만나겠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다른 투자자를 찾아보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끌었는데, 분명 그쪽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주하율의 열애설을 터뜨린 건 경고의 의미겠지. 허튼짓하면 가만 안두겠다는.
차서진이 나간 뒤로 놈이 하는 짓거리를 관찰해왔었다. 놈은 연줄이 확실한 기자가 있는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렇게 언플을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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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이야기를 하지 그랬어. 그럼 옆에서 도왔을 텐데.” “어떤 날에 터뜨릴지는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냥 내가 대기하고, 연락되는 기자 한 명 있으면 되는 거지.” 직원도 별로 없는데 여러 명이 계속 밤샘 대기를 하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 안형석은 투자자 건으로 해줘야 할 일도 많으니 더욱 안 된다.
결국 우리 회사 누구를 건드릴지 몰라 모든 자료를 준비하고 나 혼자 남았다. 놈들이 연락을 준 어제 당일에 터뜨린 게 어찌 보면 다행이다. 여러 날이 지났다면 결국 직원들을 대기시켜야 했을 것이다.
“이야, 차서진 무섭네. 또 뭔 짓을 할 것 같아?” “글쎄다.” 그걸 알면 내가 신이지.
“난 또, 너 요즘 하는 거 보면 다 아는 줄 알았다.” “언플 말고 다른 기술은 없는 것 같던데. 그래도 경계는 풀지 말자고. 투자제안서는 쫙 돌렸어?” “어. 받자마자 투자하겠다는 데가 꽤 되더라고. 생각보다 빨리 구하겠던걸. 다만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아서 시간이 걸리겠어.” “주변에 소문도 많이 내달라고 해.” “오케이. 근데, 하율 씨가 뜨긴 떴나 봐. 예전하고 달라. 투자처 구하는 게 어렵지가 않네.” “그러엄. 누구 배운데.” “아, 눼눼.” 주하율은 반짝 뜬 게 아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앞으로도 로코 장르에서 쭉 통할 수 있는 폭발력을 보였다. 거기에 경력이 길어서 연기 내공도 있으니.
여러 회사에서 안심하고 투자할 만했다. 파워볼실시간
“이번엔 옥석을 잘 골라야겠군. 이런 일 또 있으면 안 되잖아?” “그렇지.” 안형석은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친구 탓은 아니지만 나름 책임감을 느끼는 듯 했다.
“몇 군데 추려 놔.” “응.”
자, 주하율 문제는 해결했으니.
“베리걸즈 편곡은 어떻대?” “맡겼어. 지연이 곡은 지연이가 하기로 했고. 생각보다 신 팀장이 인맥이 넓던데.” 신혜진 팀장은 베리걸즈의 앨범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애들 속상하지 않게 파트분배 제대로 해줘야지. 특히 타이틀 곡들 말이야.” “안 그래도 아주 공평하게 해달라고 말해놨어. 지연이는 자기가 미리 생각해놓은 게 있는 것 같긴 한데. 뭐, 곡도 잘 뽑혀서 좋긴 좋다만···.” 나는 흡족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는데 안형석이 여전히 찜찜해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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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쩔 거야?” “아아.” 앞으로의 일이 걱정인 거군.
하지만 차서진의 공격 따위 가볍게 제압했다.
“그냥 나한테 맡겨둬.” 이제는···.
“옛날의 내가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지! 실시간파워볼 ” ***
나는 사우나에 들러 깨끗이 씻은 다음, 분주히 다음 장소로 향했다.
바로 파주에 있는 재망뚝 드라마 촬영장.
해프닝으로 끝이 났으나 찌라시를 보고 놀랐을 주하율이 걱정이 됐다.
물론 담당 매니저인 양태평이 잘 케어하겠다고 했지만 말이다.
막 씬 하나를 마치고 주하율이 촬영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양태평이 듬직한 모습으로 나란히 걷고 있다.
“역시 하율 씨. 연기 내공이 장난 아니에요!” 내가 엄지를 치켜들며 주하율 곁으로 다가갔다.
“아고 깜짝이야. 대표니임. 왜 이제 오세요?” 주하율의 눈가가 갑자기 촉촉해졌다. 역시나 마음이 덜컹 했었나 보다. 주하율에게는 처음으로 겪는 스캔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건 많이 봤겠지만 직접 경험하면 느낌이 다르다.
실제로 어제 새벽에 내게 전화를 할 때 목소리는 장난이 아니었다. 언제나 밝고 침착한 주하율의 목소리가 떨려나왔으니까.
새벽 4시였는데 말이다. 주하율은 자고 있을 거라고 안심했는데.
불면증이 있는 친구 하나가 기사를 보고 주하율을 위해 얼른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게 곧장 연락을 한 거고.
하지만 나는 대처가 먼저였기에, ‘대응 중입니다. 곧 정리되니 푹 자요.’ 라고만 해놓고 해결에 몰두했었다.
근데 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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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한잠도 못 잤어요.” 그럼 그렇지.
“대표님도 밤 새셨다면서요?” “하하, 뭐 그렇죠.” 양태평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이야기해준 모양이었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대표님. 저를 위해 힘써주셔서. 으흑···.” 금세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울면 안돼요, 하율 씨. 또 촬영해야 되잖아요.” “네!! 저 안 울 거예요. 안 울 겁니다.” 그녀는 다람쥐 같은 얼굴을 하고 입을 앙다물었다. 울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고 눈물을 삼켰다.
가까이에 있던 스태프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양 실장님한테 들었는데 새벽에 구 대표님 일처리가 엄청나셨다면서요?” “열애설 뜨자마자 아주 반박기사를 똭!
“찌라시를 쓴 기자가 꼬랑지를 팍 내렸던데요?” 나는 웃으며 양태평을 바라봤다. 양태평은 자기가 한 일도 아닌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짜식, 흐흐.

뒤이어 나오던 추민준도 나를 보더니 후다닥 뛰어왔다.
“해프닝으로 끝나서 다행입니다, 대표님. 덕분에 하율 씨도 그렇고 드라마도 잘 넘어갔네요. 감사합니다.” “아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제 배운데.” “그 말을 들으니 왠지 하율 씨가 부러운데요?” “하하, 그럼 제 배우하실래요?” “그 말 잊지 마세요!” “큭큭큭.” 추민준도 농담이고, 나도 도강식 대표의 배우를 빼올 생각은 없다. 그저 장난스럽게 웃었다.
스태프의 호출로 다시 촬영을 들어가게 된 주하율이 말했다.
“참, 은미성 작가님도 여기 와 계세요.” “은 작가님이요?” 은미성 작가는 마지막 화까지 탈고하고 현장에 놀러와 있다고 했다.


지금 주하율 대기실에서 잠시 쉬고 있다고 해서 나는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 대표님.” 내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자 주하율 쿠키를 주섬주섬 먹고 있던 은 작가가 놀랐다.
“작가님, 진짜 여기 계셨네요?” “아, 네. 하율 씨 대기실엔 먹을 게 많아서요.” 늘 그렇듯 쿠키의 모양은 어마무시 했는데, 테두리가 살짝 타 있는 유령같이 생긴 것을 들고 은 작가는 아주 맛있다는 표정으로 우물우물 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양보고 식겁했는데, 요즘은 하율 씨 쿠키 먹어줘야 당 충전이 돼요.” 은미성 작가의 얼굴은 황폐해보였다. 눈밑까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 보다 살이 5kg는 더 쪄 보였다.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 모양이다.
주하율 쿠키 얘기하는 것만 봐도 그렇고.
“탈고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는 기성작가 타이틀을 달게 됐네요.” 파워볼사이트 드라마 한 작품을 써낸다는 게 참 어렵다. 입봉도 입봉이지만 시간에 쫓기며 퀄리티 있는 대본을 써나가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은미성 작가는 드디어 이 과정을 한 번 클리어. 그것도 성공적으로.
그녀의 실력을 생각하면 앞으로는 탄탄대로다.
은 작가가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다 구 대표님 덕분이죠.” “그런가요? 그럼 저랑 계속 같이 일하시던가요.” “그거야··· 케헥.” 스윽 낚으려고 했는데.
쿠키 가루가 목에 걸린 듯 기침을 해대는 은 작가였다.
안쓰럽네. 말하는 것도 힘든가.
“좀 쉬시지 그랬어요?” 은 작가는 빨갛게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구 대표님이 어제 대활약하신 걸 실시간으로 지켜봤어요.” 엥? 새벽 4시의 일을?
“안 주무셨어요?” “밤낮이 바뀌어서 아직 안 돌아왔거든요. 큭큭.” “하이고······. 이제 탈고하셨으니 푹 쉬세요.” “그러긴 그래야죠. 그런데······.” 음? 그런데?

“실력이 대단하시던데요. 거의 10분? 일이 커질 새도 없이 잡으셨잖아요.” 정말로 집중해서 봤나보다.
“하핫, 우리 배우인데 철저히 보호해야죠.” 나는 부담 없이 생색을 냈다. 이런 건 좀 자랑해도 되잖아?
“구 대표님은 연예인을 상품으로만 보지 않으시네요. 정말로 사람들을 아끼시구요.” “그럼요. 실은.” “실은?”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헌데 내 말을 들은 은 작가가 별 다른 반응도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에···. 너무 오그라드는 이야기였나?
헌데 은 작가의 침묵이 조금 길다. 그랬나 보네. 오그라드는 이야기였나 보네.
어색함을 참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눈앞의 하율 쿠키라도 집어 먹으려는 찰나.
“저도 제 뒤에 대표님 같은 분이 든든하게 있으면 좋겠어요.” 휴우. 침묵이 드디어 깨졌네.
그런데 뭐라고?
“저, 다음 작품 집필계약도 구 대표님 파워볼게임 회사랑 하고 싶어요. 아니 아예 작가 계약을요.” “예?”
“괜찮죠? 작가 계약은 안 받으세요?” 이미 여러 제작사에서 은미성 작가에게 러브콜이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인이랑?
우린 매니지먼트산데.
추후 로코퀸이 되는 주하율이 당장 들어갈 드라마를 찾아 은미성 작가와 계약을 했던 것이다.
이건···.
“계약서는 당장 보낼까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내 품으로 날아드는!
바로 그런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주하율의 다음 작품을 고민할 필요도 없어진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아예 10년 이렇게 작가 계약 할까요?” “세부 사항은 천천히 의논하시죠.” 20년은 어떨까.
“호호, 그럴까요? 그리고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다음번에도 WE 미디어랑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나도 그러면 좋겠다.
WE 미디어는 우리 드라마 ‘재망뚝’을 마지막으로 폐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것도 제가 최대한 힘써 보겠습니다.” 하지만,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날 밤.
퇴근을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네, 구은우입니다.” – CI 투자자문 대표 차영진입니다.
어라? 형 새끼고만. 엔트리파워볼
한류스타 차서진의 형 차영진. 현재 우리 회사의 최대 투자자였다. 물론 바지사장이지만.
나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 어디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한 번 들어보자.
“아유, 투자자님이시군요. 안녕하세요, 차 대표님.” 차서진의 형임을 알고 있지만 일단 모른 척 했다.

  • 하하하, 오늘 새벽 구 대표님 실력 구경 잘 했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흐음. 차서진은 언급하지 않고, 주하율의 찌라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것도 당당히.
    이런 건 별거 아니라는 건가?
  • 그냥 경고만 하려던 거였습니다.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하하하, 재미있네요.” 남의 배우 이미지 망칠 뻔한 게 그저 경고일 뿐이었다고. 이제 빛을 보려는 주하율한테 흙탕물을 끼얹는 일이었다.
    개자식. 어디서 이런 더러운 수는 배워가지고.
    이놈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차서진이 나가고 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가 있었다.
    동생 덕에 돈벼락 맞아서 목에 기브스 하고 다니던 놈. 톱스타는 동생인데 지가 톱스타인 줄 알고 거만이 하늘을 찌른다고 했었다.
  • 투자자로서 서운해서 그랬습니다. 이 정도 투자했으면 간판배우랑 대표님 좀 뵙자고 하는 게 실례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홀랑 다른 회사들에 투자제안서 돌렸다고 들었습니다.
    바퀴벌레 같은 새끼.
    “과격하게 의사표현을 하셨네요.” – 구 대표님 덕분에 표현을 제대로 못했지만 말입니다. 구 대표님, 직접 만나서 담판 지으시죠.
    “그럽시다. 만나서···.” 그 말도 안 되는 ‘표현’이라는 거.
    다시는 못 하게 만들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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