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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였다.
여기서 세 정거장 떨어진 곳에 살았기에 여기에 왜 왔는지가 궁금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버스 타고 지나가다가 너희들을 봤지. 바로 내려서 걸어온 거야.” “오늘은 일찍 끝났네?” “돈도 좋지만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내일은 쉬려고.” 재구는 피곤해 보였어도 특유의 밝은 표정은 여전했다. 상혁이가 고개를 들어 재구를 봤다.
초점이 흔들려 퀭한 눈동자.
“재구야, 오랜만이네.” “얘는 벌써 맛이 갔네. 양복 입은 걸 보니 취직한 거야?” “TJ 캐피탈에 들어갔대. 오늘 첫 출근.” “역시 대기업은 좋네. 첫날부터 술을 사 주고.” “좋지. 아주 좋아.” 재구는 얘가 왜 이러냐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상혁이는 일어나서 재구와 어깨동무하고 빙긋이 웃었다.
“오랜만에 같이 술 먹자.” “나야 괜찮은데 너는 취한 것 같은데?”파워볼실시간 “취했었는데 너 보니까 술이 깬다. 기분이 좋아.” “상혁이 멀쩡해졌네. 오랜만에 보는데 헤어지기 아쉽잖아. 너도 내일 쉬고.” “내가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친구야, 고맙다.” 재구는 나와 상혁이의 가운데 끼어 팔짱을 끼고 가까운 토다리로 들어갔다. 낡은 갈색 탁자와 우중충한 분위기. 고등학교 졸업 후 이들과 같이 와서 술을 마신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술맛이 뭔지 아무것도 몰랐었는데, 지금은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둠 꼬치를 주문하고 맥주를 마셨다. 상혁이는 방전됐던 에너지가 충전된 것처럼 이내 활발해졌다.
“같은 동네 살아도 이렇게 만나기가 힘드냐? 다들 돈 버느라 바빠. 그래도 얼굴은 잊지 않도록 만나고 살자.” “나 때문에 그렇지. 시장 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야 남들처럼 밤에 만나서 회포를 풀 텐데 말이야.” “이렇게 만나니 좋네.” 나는 그들과 건배하며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재구의 장사도 잘됐고, 마음에 안 드는 TJ 그룹이긴 해도 대기업에 들어간 상혁이도 밝았고, 나 또한 일이 잘 풀려서 마음이 편했다.
재구가 나를 보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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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사업은 잘 돼?” “출발은 좋아.” “사람들이 무슨 신발을 신고 있나 궁금해서 이틀 정도 바닥을 봤는데, 네가 만든 신발 봤어. 신기하더라. 젊은 여성들이 주로 신더라.” “지금은 그런데 앞으로 확장해야지.” “내 건 없냐?” “미안하다.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다. 다음에 갖다 줄게.” “됐어. 시간 날 때 내가 살게.” 상혁이는 싱글벙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재구가 상혁이 등을 툭 쳤다.
“공부하느라 고생했다. 취직했으니까 돈 많이 벌어서 신나게 놀아라.” “어떻게 노냐?” “신나게.”
“술이나 먹자.” 상혁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 의미를 알았다.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을 것이다. 누구보다 상혁이의 대기업 취직을 축하했을 것인데. 첫 월급을 타서 내의라도 선물하고 싶었을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상혁아, 마시자. 이제 좋은 날이 기다리고 있다. 연애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가끔 일탈도 하고 그래.” “일탈? 그거 매력적으로 들리네.” “그래, 인마! 너무 모범적으로 살아도 재미없어. 우리 나이트 가자. 우리 가게 근처에 새로 생긴 나이트 있어. 물도 좋으니까 우리 한번 가자.” 재구는 아는 동생이 웨이터로 있다며 꼭 가자고 종용했다. 나이트도 좋고, 놀러 가도 좋고, 어디든 함께한다면 좋은 친구들이었다.
상혁이는 활짝 웃으며 조금 전의 상심을 덜어 냈다.
“그러자. 나도 나이트 가 보고 싶어.” “언제든지 와. 너는 내가 귀빈처럼 모실게.” 상혁이가 나이트에 간다는 걸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너무나 깊이 뇌리에 박힌 모범생 이미지가 상상력을 제한했다. 재구랑 놀면 유흥에 빠질까 봐 걱정도 되고.
“재구는 계속 장사할 거야?” “낮과 밤을 거꾸로 사니까 뼈가 삭는 기분이야. 몇 년만 더 하고 다른 일을 해야지.” “무슨 일?”
“농장을 해 볼까 고민 중이야. 강원도에 땅을 많이 사 놓기는 했어. 농약 안 치고 건강한 농산물을 재배하고 싶은 게 꿈이야.” 재구는 역시 남달랐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후 정부가 농촌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친환경 농업정책이 시행됐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다. 우리나라도 국민 소득이 올라가면 선진국처럼 안전한 먹거리를 찾을 것이기에 재구의 안목은 탁월했다.
상혁이 우리 둘을 불만 섞인 표정으로 바라봤다. 파워볼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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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부자 놈들, 나는 땅이 하나도 없는데.”파워볼게임 “언제 같이 양평에 가자. 공기도 좋고, 쉴 수 있는 공간도 있으니까.” “거기 산 땅은 뭐 하려는지 진짜 궁금하다.” 상혁이의 물음은 여전히 답을 끌어낼 수 없었다. 아직도 비밀이니까.
“지금은 봉인이 해제될 시점이 아니야. 때가 되면 내 입이 열릴 거야.” “도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건물을 짓겠지. 노가다도 했으니까 뭘 지을 건 분명해.” 재구는 역시 예리했다. 물론 뭐를 지을 건지는 모르겠지만.
“술이나 마시자.” 재구가 집요하게 추궁할 게 분명해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며 동네 친구들의 근황을 주고받았다.
달동네에서 어렵게 살던 친구들은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신장보가 영등포 청과물 시장에서 하역 일을 한다는 게(깡패가 될 줄 알았기에) 놀라웠고, 절에 딸린 집에서 어렵게 살던 세 자매 중 두 명이 술집에서 일한다는 소식은 안타까웠다.
자기 삶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무게라 감히 타인의 삶을 평가한다는 건 오만이었다. 다만 열심히 사는데도 환경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러웠다.
둘째 형이 내게 말했던 ‘누군가는 변화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대화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 나와 상혁이는 뒤늦게 새벽 3시가 넘은 걸 확인하고 급히 일어났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천혜향이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봤다.
“잠을 안 잤니? 눈이 시뻘겋다.” “그러니? 어제 동네 친구들이랑 한잔했어.” “늦게까지 마셨나 보다. 너도 좀 쉬어야 하는데. 학교 수업까지 해야 하니 쉴 틈이 없겠다.” “너는 죽으면 안 돼!” 한나봉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아직은 젊으니까 괜찮아. 회의하자.” “오늘은 백화점 안 가도 돼?” 엔트리파워볼
EOS파워볼 “내가 없어도 돼. 아르바이트생 한 명 붙였어.” 그레이트 백화점은 정이령에게 믿고 맡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후에는 빠져서는 안 될 수업이 있어 학교에 가야 했다. 나는 한나봉을 보고 물었다.
“오늘은 몇 켤레나 납품했어?” “그레이트 백화점에 700켤레, 여사장 백화점에 500켤레 했어.” “당분간은 그렇게 해. 쉽게 구할 수 없는 제품이라는 이미지는 유지하자. 혜향아, 부산 공장에서는 언제쯤 만 켤레 이상이 가능할까?” “다음 주면 될 거야.” “좋아.”
예정보다 빨리 다음 주에 신촌의 두 개 백화점에 매장을 얻을 계획이다. 서울의 다른 백화점에서도 조금씩 문의가 오고 있고, 부산, 인천 같은 대도시 쇼핑센터에서 계약하자는 제안이 이어져 생산량을 늘릴 때가 임박했다.
“나봉이가 고생 좀 해야겠다. 인천, 대전, 대구, 광주, 부산 등 계약 문의가 오는 쇼핑센터에 가서 우리 조건에 동의하면 도장 찍어.” “마진을 40% 주면 되는 거야?” “응. 인기가 높아지고 있으니까 동의할 거야.” “혜향아, 다음 모델은 방향을 정했어?” “네가 말한 대로 스니커즈가 나을 것 같아. 신소재로 밑창을 만들어서 최대한 가볍게 만들려고 해.” “디자인은 다섯 개가 나와 있다고 했지?” “응. 여기.” 나는 천혜향이 만든 샘플 5종을 확인했다. 예전에 디자인했던 것을 보완한 것인데 하얀색, 빨간색, 파란색, 녹색, 검은색의 원색을 다소 엷게 만들고, 상표를 돋보이게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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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해서 좋네.” 카피는 ‘예쁜 신발을 입으세요.’였다. 신발을 신는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신발도 옷처럼 입는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관심을 끌려는 의도였다. 신발 앞뒤가 곡선형으로 잘 빠졌고, 청바지와 캐주얼한 의상에 어울리는 원색 계열이라 광고만 잘 나온다면 히트할 자신이 있었다.
살이 많이 빠진 천혜향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혜향아, 조금만 더 고생하자. 다음 달에는 사람 하나 더 오픈홀덤 구해서 너는 디자인에만 몰두하게 해 줄게.” “그러면 고맙지. 의류는 어떻게 할까? 신촌에서 테스트했는데 거의 균일하게 나가. 아무래도 많이 공급하지 않으니까 통계가 잡히지 않는 것 같아.” “일단 준비만 하고 있어. 영등포 매장 확보하면 그때 본격적으로 생산하자. 원단만 확보해.” “알았어.”
“성욱이가 입을 옷은 잘 준비하고 있지?” “바이올렛 색 체크무늬 셔츠에 색이 빠진 청바지야. 성욱이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잘 어울릴 거야. 최상의 제품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보름이면 나올 거야.” “혜향아, 청바지를 조금 찢어 보면 어떨까?” 내 말에 천혜향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담배 피우는 애들이나 입는 거잖아. 아직은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야. 히피 문화가 있지도 않으니까.” “많이 찢지는 말고, 무릎 아래와 허벅지에 살짝만.” “글쎄. 그게 될까?” “X세대의 시대잖아. 그들의 감각에 승부를 걸어 보자.” “모험인데.”
“어차피 신발이 주류고, 옷은 따라가는 거니까 손해는 없을 거야.” 나는 눈을 짜그리며 혜향이에게 최대한 귀엽게 보이려고 했다.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동의를 얻는 게 중요했다. 나는 최대한 깜찍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혜향아~.”
“알았어. 네 의견에 따를게.” “고맙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는 말자.” X세대는 개성을 중시하고,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그들이 유행을 선도할 것이라고 믿었다.


민필혁은 이한빛 부장을 앞에 두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나를 안다고 했다고?” “네. 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름은 뭔지 몰라?” “죄송합니다.” 민필혁의 개 같은 성질을 아는 이한빛은 바로 사과했다.
“심사 위원 애들 말로는 실력이 아주 뛰어나서 잡아야 한다고 하던데.” “오빠라는 사람이 계약서를 수정할 걸 요구했습니다. 모든 비용은 영수증 처리를 해야 하고, 회사는 반드시 가수의 동의를 구한 후에 관련 사업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미친 새끼네. 그 새끼 면상이나 보고 싶네. 누구는 땅 파서 장사하나?” 민필혁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김새미 부모는 반응이 어때?” “모든 걸 오빠에게 일임한다고 합니다.” “계속 쑤셔 봐. 바람 잔뜩 집어넣어서 무조건 도장 찍게 만들어.” “알겠습니다.” “길건희 그 애는 SS핑크 백댄서로 집어넣어. 얼굴을 알린 다음에 내년에 데뷔시키자. 노래는 늘지가 않지?” “성량이 워낙 작아서 많이 힘듭니다.” “뭐, 노래 잘한다고 가수 하나? 립싱크가 있으니까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길건희랑 같이할 애 하나 알아보고.” “네.”
민필혁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고 손짓으로 나가라고 시늉했다. 이한빛이 나가자 인터폰을 들어 박 실장을 호출했다. 빠르게 들리는 구둣발 소리. 노크 소리에 이어 박 실장이 뛰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여미정은 코에퍼럴 사장이랑 어디를 간 거야?” “필리핀에 간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일주일째야. 연락이 안 돼?” “원래는 어제 돌아왔어야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당장 오늘 저녁에 접대해야 하는데, 이게 인기 좀 얻었다고 뵈는 게 없네. 당장 코에퍼럴 부장에게 전화해서 어디 있는지 파악해. 이제 아주 마누라처럼 데리고 다니네.” “네. 본부장님.” 민필혁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박 실장을 노려봤다. 매서운 눈빛에 주눅이 든 박 실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김새미 오빠라는 새끼는 뭐야?” “대학에 다닌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새미 엄마가 식당 한다고 했지?” “네.”
“어딘지 알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믿느니 양치기 소년 말을 믿겠다. 준비해.” “네?”
박 실장이 의문을 채 다 표하기도 전에 민필혁이 발로 그의 정강이를 찼다.
“멍청한 새끼! 대가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내가 직접 가게로 갈 테니까 준비하라고!” “네. 본부장님.” 민필혁은 책상에 놓인 김새미 지원 서류를 구기며 이를 악물었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까불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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