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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화 주위가 밝아지면서, 밀려드는 동굴 거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놈들은 털이 잔뜩 돋은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말들이 콧김을 뿜으며 내달렸다.
“이런 미친… 루 솔라여…!” 미구엘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고삐를 당겼다.
그런 주위의 혼란과는 관계없이, 루시의 시선은 허공에 타오르는 불덩이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눈앞에서 일어난 신비와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긴 것이다.
마법사를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선보인 마법은, 지금 이안의 마법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키이잇마차 근처까지 다가온 동굴 거미 한 마리가 펄쩍 뛰어올랐다.
메뚜기를 방불케 하는 움직임.
마차 주위에 일렁이던 화염구 하나가 뿜어져 나간 건 그 직후였다.
퍼엉-
큰 폭발은 아니었다.
하지만 솟구친 거미를 불덩어리로 만들기엔 충분했다.
키에에엑-! 엔트리파워볼
그대로 떨어진 거미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게 신호탄이었다.
파사사삭- 키잇- 키이잇동굴 거미들이 사방에서 껑충껑충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미구엘이 비명을 내질렀다.
마차의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말들이 계곡의 오르막을 평지처럼 달렸다.
“운전에만 집중해! 말이 죽으면 네가 마차를 끌어야 할 거다!” 윽박지른 이안이 팔을 내저었다.
마차 주위를 호위하듯 타오르던 화염구들이 일제히 뻗어 나갔다.


퍼버버벙-!
눈부신 폭발. 루시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이안이 마차 뒤로 돌아가며 손을 뻗었다.
화르르륵순식간에 피어오른 불덩이들이 다시 한번 뻗어 나갔다.
첫 번째 포격을 뚫고 달려들던 거미들이 재차 불길에 휩싸였다.
루시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이게, 진짜 마법.
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전쟁의 시대에는 마법사 개개인이 하나의 군단이나 다름없었다는.
지금 이안의 모습이 딱 그랬다.
턱-!
그때 시커먼 형체 하나가 짐칸으로 떨어졌다.
연달아 이어진 포격을 뚫고, 끝내 착지에 성공한 동굴 거미였다.
털이 돋은 굵고 긴 다리. 검고 거대한 몸통. 열 개도 넘는 눈알이 루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아가리가 여러 겹으로 열리면서, 톱날 같은 이빨들이 드러났다.
놈이 루시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뻐억-!
마차로 뛰어든 이안이, 놈의 몸통을 그대로 걷어찼다.
이안은 옆으로 굴러떨어지는 놈을 향해 곧바로 손을 뻗었다.
퍼엉-!
그대로 뻗어 나간 화염구가 거미를 집어삼켰다.
몸부림과 비명. 루시와 이안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루시가 전혀 겁먹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챈 듯, 그가 내뱉었다.
“구석에 들어가 있어. 횃불은 네가 들고.” 이안은 루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다시 몸을 날렸다.
그가 떠난 자리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것도, 마법…?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루시의 눈에 들어온 건, 달리는 말의 안장에 아슬아슬하게 착지한 이안과 달려들고 있는 동굴 거미였다.
푸확-!
다음 순간, 동굴 거미가 뭔가에 떠밀린 것처럼 허공에 멈췄다.
쉬악-!
이안이 검을 내리쳤다.
검날이 닿지도 않았건만, 거미의 몸이 머리부터 배까지 반으로 갈라졌다.
녹색의 끈적한 체액이 흩날렸다.
이안이 그대로 마차 앞으로 달려갔다.
퍼엉- 콰광-! EOS파워볼
묘기 같은 전투가 이어졌다.
이안은 주위를 빙빙 돌면서, 때로는 불덩이를 날리고 때로는 닿지도 않는 거리의 거미를 베어 넘기며 마차를 지켰다.
그 과정에서 몇 번 삐끗대며 낙마할 위기를 겪었지만, 어떻게든 자세를 다잡으며 극복해 냈다.
그리고 마침내, 동굴 거미들이 썰물처럼 물러났다.
루시에게 횃불을 넘기고 양손으로 고삐를 쥐고 있던 미구엘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됐다! 해냈소! 봐라! 이게 우리 마법사님이다, 이 빌어먹을 거미 새끼들… 어?” 미구엘의 눈이 순간 커졌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관도 너머.
불쑥 튀어나온 바위 위로 새카만 그림자가 솟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봐도 비정상적인 크기.
“미구엘. 멈춰야 할 것 같아요.” 내뱉은 건 루시였다.
미구엘이 반사적으로 고삐를 당겼다.
바위 위에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솟구쳐 오른 건 그 직후였다.
동굴 거미들보다 훨씬 둔탁한 움직임.
쿠웅-!
비탈길에 육중하게 착지한 그것은, 다른 동굴 거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놈이었다.
회색빛이 도는 털.
열여섯 개나 되는 붉은 눈알.


괴상하게도, 놈의 아가리 부분은 인간 여성의 상반신을 형상화한 것 같은 형태였다.
물론 찰흙으로 어설프게 빚어낸 듯한 형상이라, 아름답긴커녕 오히려 더 기괴하기만 했다.
키… 키이이잇풀벌레 소리 같은 울음소리.
놈과 마차 사이를 가로막으며, 이안이 내뱉었다.
“졸라 징그럽게 생겼구나, 너.” 지금 그의 눈에는,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퀘스트 창이 떠올라 있었다.
동굴 거미 여왕.

키이잇-!
몸을 숙였던 여왕이 또다시 둔중하게 솟구쳤다.
보기와는 달리 엄청난 속도.
그대로 자신을 깔아뭉갤 작정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안이 고삐를 후려쳤다.
촤라락-!
여왕의 꼬리에서 거미줄이 뿜어져 나온 건 그 직후였다.
그건 거미줄이라기보단 끈적이는 물줄기에 가까웠다.
“……?!” 눈을 치켜뜬 이안이 몸을 날렸다.
거미줄에 뒤덮인 말이 바닥을 굴렀다.
쿠웅-!
여왕이 그대로 말을 내리찍었다.
거대한 몸통이 땅을 두드리면서, 말의 피와 살점을 사방에 흩뿌렸다.
바닥을 구르며 간신히 멈춘 이안이, 고깃덩어리가 된 말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키… 이잇…. 로투스바카라
거미 여왕의 아가리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인의 상반신이 좌우로 쩍 갈라졌다. 무수한 칼날이 돋은 것 같은 아가리. 여러 겹의 턱 사이로 낫 같은 송곳니가 길게 튀어나왔다.
그 끝에서 독액이 실처럼 늘어지며 뚝뚝 떨어졌다.
이안이 입맛이 뚝 떨어진 표정으로 손을 뻗은 것과, 거미 여왕이 그에게 달려든 건 거의 동시였다.
콰아아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시의 눈이 커졌다.
용의 숨결 같은 불길이 이안의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키에에에에달려들던 여왕의 머리가 밀려났다.
불길이 사그라들었을 때 이안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뒤로 물러나는 대신, 오히려 여왕의 몸통으로 파고들었다.
양손으로 움켜쥔 단죄의 검이 여왕의 거대한 몸통에 틀어박혔다.
콰지직- 키에에엑-!
그가 검을 내지르는 것보다, 여왕이 발작하듯 뛰어오른 게 더 빨랐다.
순식간에 10미터 가까이 멀어져 뒤집힌 채로 떨어진 놈이, 허겁지겁 자세를 다잡았다.
키엣- 키이이잇-!
여왕이 몸을 잔뜩 웅크렸다.
여성의 형태였던 아가리는 불에 익어서 한층 더 기괴한 모습으로 변했고, 붉은 홑눈들도 네 개나 하얗게 멀어 버린 채였다.
키잇- 키에에엣!
위협하듯 울부짖은 여왕이 몸통을 아래로 불쑥 내밀었다.
검이 긁고 간 자리에서 진녹색 진액이 흘러내리고.
촤아아악-!

거미줄이 마구잡이로 뿜어졌다.
이안이 또다시 바닥을 굴렀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거미 여왕은 이미 비탈길을 따라 멀어지고 있었다.
파스스스- 파스스슷계곡 주위의 나무들이 파도치듯 흔들렸다.
동굴 거미들이 여왕을 따라 도망치고 있었다.
“튈 줄이야….” 허탈하게 읊조린 이안이 일어섰다.
온 사방을 뛰어다니고 바닥을 나뒹구느라, 그의 몰골은 이제 거의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고생하셨소. 또 저런 미친 괴물을 물리치다니. 매번 느끼지만,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 전투였소.” 미구엘이 양팔을 들어 환영했다.
코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이안이, 문득 루시를 마주 보았다.
“마법사의 전투가 다 이렇진 않아. 난 반쪽짜리라 이 모양인 거고.” 루시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 반쪽짜리 같지 않았어요. 정말, 정말 대단했어요.” 진심이었건만. 짐칸에 오르는 이안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마차가 다시 출발하는 가운데, 그가 루시를 돌아보았다.
“너는 나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대단한 마법사가 될 거다. 적어도 적색 마법에 있어서만큼은.” “…….” 상상도 할 수 없고 믿기지도 않는 이야기였다.
루시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혹시나 싶어 정신을 집중해 봤지만, 오늘 내내 그랬듯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형씨도 형씨지만, 루시도 대단했소. 비명 한 번 안 지르다니.” “비명은 너만 질렀지. 루시는 겁먹지도 않았다. 아니….”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이런 걸 무서워하는 걸 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무섭지 않으니까요.” 루시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제가 죽거나 다치는 건,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내가 두려운 건 오히려….
뒷말을 삼키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안이 입맛을 다셨다.
“또 그 표정이군. 언제까지 그럴 거냐?” “내 말이 그 말이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얼만데. 편하게 지내자고, 편하게. 응?” 미구엘이 눈썹을 들썩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다신 그딴 얼굴 하지 마라. 특히 애 앞에선.” “이게 왜? 나 정도면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이잖소.” “도적놈들 사이에선 그렇겠지.” 둘의 대화에, 루시는 말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억눌렀다.
가슴에 번지는 그들에 대한 감정도 온 힘을 다해 가라앉혔다.
평생 해 왔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로투스홀짝
‘이게 맞아.’ 루시는 자기 자신에게 속삭였다.


이들을 지금보다 좋아하게 된다면, 분명 큰 불행이 닥칠 테니까.
그녀가 좋아했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계곡의 경사가 점점 완만해졌다.
주위는 어느새 계곡보다는 협곡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저거, 동굴이오?” 미구엘이 문득 내뱉었다.
비탈길 중턱. 바위가 갈라져 생긴 커다란 틈에 불경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래. 아마 저기가 그 거미들의 둥지…… 이런.” 동굴을 노려보며 읊조리던 이안이, 문득 탄식했다.
그의 눈동자가 물결치듯 일렁였다.
“…계곡을 통과하려면 얼마나 남았지?” “아직 정상도 못 갔으니까. 아마 새벽 늦게까진 움직여야 할 거요. 말들한텐 내리막이 더 위험하기도 하니까.” “아까 같은 추격전이 벌어지면?” “말들이 못 버티지. 적어도 오늘 밤엔 무리요. 내리막에서 다리라도 부러지면,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갑자기… 이런 건 왜 물으시오?” “여왕이 우릴 포기하지 않은 것 같거든.” 동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이안이 덧붙였다.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루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미구엘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또… 쫓아 올 거라고?” “아마도. …어쩔 수 없지.” 혀를 찬 이안이 일어섰다.
그가 미구엘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서 조용히 기다려라.” “…혼자 들어가시려고?” “그럼 따라 들어갈래?” “아니, 그게, 가 봐야 짐밖에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는 마차를 지켜야 하잖소.”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 친 이안이 말을 이었다.
“근처의 거미는 죄다 저 안에 있는 것 같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횃불을 주위에 몇 개 세워 놔라. 저것들, 불을 무서워해.” “알겠소.” “두어 마리 정도는 너 혼자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다. 교활한 놈들이니까, 방심만 하지 마. 그걸로 대가리나 배만 잘 찍어도 돼.” 미구엘 허리춤의 손도끼를 턱짓한 이안이 루시를 돌아보았다.
그는 루시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곧장 몸을 날렸다.

또다시 바람이 휘몰아쳤다.
날다람쥐처럼 계곡을 달려 올라간 이안이 바위틈으로 쑥 사라졌다.
“하여간, 저 형씨랑 다니면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니까….” 마차 주위에 횃불을 세우면서 미구엘이 중얼댔다.
돌덩어리를 여러 개 주워 바퀴에 괴어 놓은 그가, 비로소 다시 마부석에 올랐다.
“그런데 또, 저러는 걸 보다 보면 계속 따라다니고 싶어지기도 하단 말이지. 좀 놀라워야 말이지. 안 그러냐?” “신기해요. 대단하고.” 루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구엘이 씩 웃었다.
범죄자 같은 미소.
“그치? 어디 가서 얘기해도 아무도 안 믿겠지만. 저 양반은 이런 일을 밥 먹듯이 해낸다니까. 내가 볼 땐 저 동굴도 이제 곧-” 콰르르- 끼에엑- 끼에에에그때, 동굴 너머에서 웅웅 울리는 굉음과 비명이 메아리치듯 번지기 시작했다.
동굴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루시와 눈을 마주친 미구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렇게 난리가 날 거다. 안 따라가길 잘했지. 분명히 맨정신으론 못 버틸 광경일 거다. 전에도 그랬거든.” “전 궁금한데요.” “겪어 보기 전엔 나도 그랬어.” 루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미구엘이 흉터를 씰룩댔다.
“거 봐라. 웃으니까 보기 좋잖…” 파사삭- 파스스슷문득 들려온 바람 소리에, 미구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재빨리 석궁을 집어 든 그가 몸을 일으켰다.
“시부럴… 루시, 몸을 낮춰라.” 루시가 짐칸에 바짝 몸을 숙였다.
파스스- 파스스스스사방에서 울리는 듯한 바람 소리에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던 미구엘이, 한순간 인상을 구겼다.
비탈길을 따라 내달리는 거미를 발견한 까닭이었다.
몸이 반쯤 타 버린 동굴 거미였다.
아까 이안의 공격을 받은 놈들 중 하나였다. 오픈홀덤
그때의 충격으로 여왕의 통제력에서 벗어났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한 채, 미구엘이 석궁을 놈에게 겨눴다.
비탈길 중간까지 미끄러진 놈이, 예고도 없이 뛰어오른 건 그 직후였다.
“……!” 숨을 멈춘 미구엘이 석궁을 치켜들었다.
쉬악, 이어진 날카로운 파공음.
퍼억- 키에에엑-!
달려들던 놈이 뚝 떨어졌다.
곧바로 석궁을 내려놓고 횃불을 든 미구엘이 웃음 지었다.
“것 봐라. 나도 사격 솜씨 하난 쓸 만하다니까-” 그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불쑥 솟구친 건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조용히 다가오던 또다른 동굴 거미.
기척을 눈치챈 미구엘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놈이 이미 코앞까지 달려들고 있었다.
“우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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