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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화
데클란이 양손을 펼쳤다.
“이미 실력은 검증됐으니까, 약간의 훈련과 서약만 한다면 내 부대의 백인대장과 부관으로 임명하고 싶은데. 괜찮은 제안이지 않나?” “용병들을 정규군으로 편성하신단 말씀이십니까?” 필립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오래 전선에 살았던 그는,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알고 있었다.
데클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솔직한 야망으로 반짝였다.
“전쟁을 앞두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지. 다른 영주들은 용병을 천시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아.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용병들은 훌륭한 전력이지. 합당한 대가와 기회만 수반된다면 말이야. 내 밑에 있으면, 공적을 올린 만큼 출세할 수 있을 거다. 물론 결코 너희를 내치지도 않을 거고.” “흐음….”
이안은 턱을 어루만졌다.
물론 제안에는 흥미가 없었다.
흥미로운 건 이자의 태도였다.
이자는 진심으로 용병들을 자신의 수족으로 삼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자의 방식이 성공적이라는 건, 패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그의 부관이라도 된 것 같은 표정이었으니까.
“영주님은 허락은 받으신 거요?” “물론. 할 거면 해 보라는 식이셨지. 아버님의 입장에도 손해는 아니거든. 우리를 선두에 세울 테니까.” “칼받이가 되기 딱 좋단 말씀이시군.” “부정하진 않겠어. 하지만 그런 만큼, 우리가 살아남는다면 강한 명분을 가진 세력이 될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고. 이래 봬도, 아예 멍청하진 않거든.” 데클란이 검지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세이프파워볼
그가 보기에도 이 서자는 절대 멍청하지 않았다.
소탈한 행동부터 적당히 솔직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화법. 눈빛과 표정까지.
여러모로 촌놈치고는 인상적이었으니까.
물론 이안에겐 전혀 먹히지 않을 매력과 제안이었다.
이런 촌구석에서 출세할 생각도 없었고, 곧 일어날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속내와 달리, 이안은 담담하게 내뱉었다.
“당장은 아무런 대답도 드릴 수 없겠소.” “왜지?”
“아직 끝내지 못한 의뢰가 있기 때문이오. 앞서 받은 의뢰를 끝마치지 않은 채로 수락할 수준의 작은 제안이 아니잖소?” “하지만 악어는 이미… 아, 그래. 애초에 오른델에 온 것 자체가 우연이 아니었던 거군. 의뢰를 해결하러 온 거야.” 말귀는 잘 알아먹어서 좋네.
이안은 어깨만 까딱였다.

데클란은 자신이 낚싯대를 드리웠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안은,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거꾸로 이자를 낚아서, 의뢰를 해결하는 데에 이용하자고.
별 관심도 없는 얘기들을 끈덕지게 들어 준 것도 그래서였다.
“내가 네 의뢰에 도움을 준다면, 내 제안을 고려해 볼 텐가?” “생각이라면야. 사실 귀하가 도움이 되실지도 확신할 수 없소.” “너희들의 용무가 이 도시 안에 있다면, 아마 될 거야. 내성을 제외하곤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거든.” 데클란이 장담하듯 말했다.
이안을 바라보는 눈길에 호의와 열망이 느껴졌다.
이안은 태연하게 그 눈을 마주 보았다.
이게 이자의 본모습이건 아니건 상관없었다. 파워볼사이트
보이는 것만큼 선한 자라면 아버지의 본모습을 알게 될 테고.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모든 게 더 쉬워질 테니까.
“송구한 말씀입니다만… 그럼 저희의 의뢰를 노출하게 될 텐데요.” 필립이 시기적절하게 끼어들었다.
특유의 고지식한 부분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됐다.


“아. 용병의 불문율 얘기군. 흠, 패튼?” 턱을 만지작거린 데클란이 고개를 돌렸다.
패튼이 미소 지었다.
“에, 도련님.” “미안하지만, 물러나 주겠어? 주변에 궁금해하면서 얼쩡거리는 놈들도 같이.” “예, 뭐, 그러겠습니다. 들었지? 쥐새끼들처럼 얼쩡대지 말고 다 물러나. 술이나 마시자고.” 패튼이 몸을 돌렸다.
이안이 앉은 구석 자리를 중심으로 작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안이 데클란을 바라보았다.
“귀하가 들으시기엔 맥 빠지는 내용일 수도 있소.” “사람의 궁금증을 자극할 줄 아는 친구로군. 말해 봐. 괜찮으니까.” “우리는 사람을 찾으러 이곳에 왔소.” 이안이 품에서 반쯤 썩은 신분 패를 꺼냈다.
데클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데이브…?” “보시다시피, 오른델의 정규군이오.” “이게 이 꼴인 걸 보니, 이자는 이미 죽었겠군.” “맞소. 이자는 죄수들을 이송하고 있었지. 이송 명령을 내린 자를 찾는 게, 의뢰의 첫 번째 목표요.” “두 번째 목표는, 이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를 알아내는 건가?” 데클란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려 드릴 수 없소만. 억울한 죽음이었소.” “정규군 내부에… 부패한 자들이 있다는 뜻이냐?” “글쎄. 그건 귀하께서 더 잘 아실 것 같소만. 귀하가 보시기엔 어떻소?” 이안이 되묻자, 데클란이 볼을 긁적였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영주군의 내부 사정은 나도 잘 몰라. 그들을 지휘하는 건 형님과 아버님이니까. 그쪽이 적통이고 후계자거든.” “그러시다면… 귀하가 도움을 주실 건 없을 거요.”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하진 않았어.” 데클란이 미소 지었다. 이안이 볼 때 그건, 어떤 기회를 포착한 자의 미소였다.
그가 의욕적인 눈으로 이안을 마주 보았다.
“내가 알아봐 주지. 내 개인적인 호기심도 더해졌으니까, 실망할 일은 없을 거야.” “그래 주신다면야. 사양하지 않겠소.” “명령을 내린 자를 찾으면, 그 후엔 어쩔 거지?” “그건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아시겠지만 나는 용병이오. 용병은 의뢰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데클란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몸에 밴 냄새를 빼면서 조금만 기다려. 좋은 소식 가지고 돌아올 테니까.” ***
데클란이 말한 조금은, 정말 조금이었다.


다음 날, 해가 지기가 무섭게 여관을 찾아온 것이다.
이제는 이안의 지정석이나 마찬가지가 된 구석 자리에, 그가 마주 앉았다.
“나름대로 알아보니, 네 말대로 이상하더군.” 용병들이 공간을 벌려 주고 입구 근처에서 떠들썩하게 떠들어 댄 덕분에, 그들의 자리는 인파 속의 밀실이나 다름없게 됐다.
이안이 미소 지었다.

“어떤 부분이 이상하셨소?” “데이브는 가족이 여동생뿐이더군. 그리고 그녀는 데이브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아겔 란의 감옥을 지키러 떠났다고 말이야.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겠지. 재미있는 게 뭔지 아나?” 데클란이 이안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다.
“데이브와 함께 죄수를 이송한 병사는 총 여섯이었지. 그리고 그들 모두가 부모가 죽었거나 고아였어.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행방을 제대로 찾아낼 사람이 없는 자들이었단 거야. 형제나 친구들 모두, 그들이 아겔 란으로 이주했다고 알고 있더군.”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자유민 중에서도 최하층민들. 세이프파워볼
체스에서 폰을 미끼로 쓰듯, 모든 음모의 첫 희생양은 그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송 명령을 내린 자는 누구였소?” “브래들리라는 자야. 지휘관이자 형님의 수족이지. 나와 친하진 않아. 사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지. 그자는 내게 존대하는 게 싫어서, 거의 말을 걸지 않거든.” 쾌활한 목소리로 말한 데클란이, 이안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대화를 나눌 생각이오. 오붓하게.” “원하는 말을 끌어내기 쉽지 않을 텐데?” 이안이 단검을 뽑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건 훌륭한 대화 수단이오. 과묵한 자도 말문이 트이게 하는 마법이 걸려있소.” 데클란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그 마법을 구경하고 싶어지는데. 끼워 주겠나?” “안 될 것도 없소. 대화의 장을 귀하가 마련해 주신다면야.” “하… 이럴 수가. 갈수록 자네가 마음에 들고 있어. 이렇게까지 말이 잘 통하는 상대는 오랜만인데. 혹시, 귀족 출신인가?” 또 이 소리군.
실소한 이안이 말했다.
“애석하시겠지만, 아니오.” “아니. 오히려 다행이군. 알다시피 내 피의 절반은 자유민이라서 말이야. 좋아, 그럼 먼저 일어나지. 생각할 게 많아. 자리가 마련되면, 바로 사람을 보낼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데클란이 일어섰다.
“나도 자네의 이 의뢰가 어떻게 끝날지, 너무 궁금하거든.” “나도 그렇소.” 해사하게 미소 지은 그가 용병들 사이로 멀어졌다.
용병들과 친구처럼 어깨동무하며 술을 사는 그를 눈에 담으면서, 이안이 입을 열었다.
“여러 번 손 안 대고 코 푸는군.” “제가 볼 땐 나리께서 사람 부려먹는 데 도가 트신 것 같습니다만.” 데클란의 자리에 앉으며 필립이 말했다.
피식한 이안이 그를 바라보았다.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 봐.” “예.”
필립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사실 그는, 이안의 명령으로 종일 데클란을 미행했다.
놀랍게도 필립은 미행이나 잠입 따위에 소질이 있었다.
겁 많은 성격이 이런 부분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도련님이 예상보다 일찍 오셔서 말이 끊겼습니다만. 큰 특이점은 없었습니다. 도련님이 아까 말씀하신 그대로의 동선이었고요. 겸사겸사, 저분의 평판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장족의 발전이군. 명령하지 않은 것까지 해 오다니.”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른델의 백성들은 다들 저 도련님을 좋아하더라고요. 자유민의 피가 섞여서 그런 것 같다고들… 아무튼.” 헛기침한 필립이 목소리를 낮췄다.
“도련님의 어머니는 몇 년 전에 죽었다더군요. 후작이 아들로 거둬들이긴 했지만 중요한 일에 쓰지는 않고. 장남인 메이슨 대공자는 저분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다들 도련님이 가장 위험한 전장으로 배치되고, 죽어서 돌아올 거라고 걱정하더군요.” 흔한 콩가루 집안이구만.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안에게, 필립이 덧붙였다.
“제가 볼 때, 저 도련님은 타락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타락했다면… 본모습을 정말 잘 감추고 있는 거겠죠.” “그래. 정말 잘 감추고 있긴 하지. 그게 혼돈이나 어둠을 숭배하는 쪽은 아닌 것 같다만. …아직까진.” 이안은 앞에 놓인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일이 다 끝난 다음에도 그럴지는,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벌써부터 코끝에, 피 냄새가 감도는 것 같았다.


침대에 기대앉은 이안은, 무덤에서 가져온 연구 일지를 펼쳤다.
오른델에 온 지 며칠 만에, 그는 가장 좋은 방을 쓰게 됐다.
다른 용병들과 충돌하는 일 없이 마을의 잡스러운 의뢰들을 해결해 주고, 여급과도 친해진 결과였다.
여관이나 주점에서 일하는 여급들은, 항상 이상할 정도로 이안을 편하게 여겼다.
아마도 위협적이지 않은 외모와 덤덤한 말투 덕분이겠지만.
그걸 고려해도 과한 호의였다.

어쨌건, 덕분에 이안은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제님은 내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다. 처음엔 완강하게 거부하고 분노했지만, 나는 결국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참된 진리였으니까. 내가 지금까지 진리인 줄 알았던 것들은 모두 거짓이었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다….’ 콘라우드의 연구 일지는, 전형적인 정신병자의 회고록이었다.
중간중간 놈이 정리한 수식이나 마법 공식, 규칙 따위가 나열되어 있었으나, 이안이 볼 땐 말이 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이 세계는 이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작동하는 세상이지만.


이안은 자신이 이 세계의 방식으로 마법을 배우게 되는 일은 없으리란 사실만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무리 예전보다 똑똑해졌다고 해도, 애초에 성립조차 되지 않는 것들을 이해할 순 없었다.
‘…하긴. 이 세계 인간들에겐 스킬 포인트로 마법을 배우고, 쓰기까지 하는 내가 더 말도 안 되는 존재겠지.’ 이안은 콘라우드라는 변방의 마법사가 어둠에 물들어, 비로소 인간의 굴레를 벗어가는 과정을 차근히 눈에 담았다.
예상대로 놈을 지하 무덤으로 불러들인 자는 아겔 란에 있었다.
이름이 언급되진 않지만, 이안은 그게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
때가 되면, 콘라우드는 그의 첨병이자 하수인으로 세상에 나올 계획이었다.
아겔 란 왕국 전체를 마경화시키기 위해서. 세이프파워볼
끝내는 검은 벽을 세운 것과 같은 공허의 존재들을 이 땅에 강림시키는 게, 그들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신도 악마도 아닌 고대 신들에게 지배당하는 삶을 원한 것이다.
타락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세상이 태초의 순리로 되돌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본래의 세상이라며 사이비의 교리로 치부했을 내용이지만.
‘이 세계는 전부 다 제정신이 아니라서, 뭐가 진실인지를 알 수가 없네.’ 일지의 내용이 이안을 처음 만난 부분까지 접어들었을 때였다.
“나리. 주무십니까?” 문이 열리고, 필립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가 속삭였다.
“대화의 장소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일 잘하는 양반이군.” 미소 지은 이안은, 일지를 미련 없이 덮으며 일어섰다.
부하들을 어둠의 제물로 바친 자를 어르고 달랠 시간이었다.
칼과 주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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