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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밤낮을 고생한 끝에 발견한 용사.
“여기, 티나.” 손가락으로 판에 찍혀 있는 티나의 사진을 가리키자 미리 상의한 대로 어떤 리액션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 바훔이 너구리를 불러 구매를 요청. 사흘이나 죽치고 앉아서 뭔가를 찾는 낌새를 냈으니 의문을 가질 법도 하건만 첫날 먹인 뇌물 덕인지 군말 없이 다른 방으로 우릴 안내했다.
“후리보나 중개소 소속의 노예라 소환의식이 필요합니다. 시골에서 불러오는 거라 값이 꽤 나갑니다만, 고객님들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니 서비스해드리겠습니다.” 한 뼘 정도 되는 작은 손을 비비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웃는 너구리의 모습에 바훔은 품에서 금화 몇 개를 꺼내어 악수하는 척 그의 손바닥에 쥐여준다.
“헤헤.”
그래, 차라리 저렇게 욕망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녀석이 낫다.
“우리가 가게를 나가거든 본 것을 모두 잊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방의 중앙엔 단순한 형태의 소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너구리가 그 옆의 판을 조작하자 프로필에서 보았던 티나가 목과 팔에 쇠사슬을 찬 채 나타났다. 길게 자란 머리칼이 얼굴을 가리고 등허리까지 닿았다. 먼지 때가 낀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눈과 잠깐 마주쳤는데 금방 고개를 돌려 피한다.
오호.
“이분이 앞으로 네 주인이 되실 분이다. 인사해라.” “티나입니다.”
억지로 힘을 준 듯한 음성. 나와 바훔은 첫 만남에 오갈 대화를 생략하고 쇠고리들을 해제한 뒤 가져온 로브를 씌웠다. 경기 시작 초기에는 왕가의 피들이 직접 거리를 순회할 수도 있다는 바훔의 조언에 따라 인적이 드문 길만 이용해 모집소의 뒷문으로 들어왔다. 세이프파워볼
주황 머리 소녀는 우리를 보자마자 풉 웃더니.
“엉성한 스파이 같네요.” “이 녀석아, 엄한 말은 입에도 담지 마라.” 소녀에게 티나를 씻겨 달라 부탁한 뒤 나와 바훔은 1층으로 내려와 모집소의 문을 걸어 잠갔다.

“경비병은?”
“퇴근시켰습니다.” 용병 모집소는 국가에서 일정한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반쯤 공기업인 셈. 경비병도 그 지원의 일환인데 모집소와 유착관계가 생길 것을 우려해 매번 경계를 서는 경비병이 달라진다. 즉, 믿을 수 없다. 용사 진영에 정보를 불어버리면 인재를 빼앗기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는지 나보다는 바훔이 더 신중하게 행동하더라.
“잘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티나라고 하셨지요. 어떻습니까?” “그 전에 용사의 등급에 대해서 알려다오.” “아, 그거라면 줄리 녀석이 정리해둔 게 있습니다.” 카운터 안쪽으로 몸을 반쯤 넣어 서류를 뒤적이다 종이 한 장을 빼 오는 바훔.


『용사 등급표 파워볼사이트
신화
경이
서사
위대
고급
희귀
평범
용사의 등급은 일곱 단계로 구분되며 신화가 가장 높아요. 하지만 지금껏 신화가 출현한 적은 없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모르죠! 어디 비밀 단체에서 숨기고 있을지도요!
알려진 경이급 용사는 총 다섯 명으로 제국에 세명 저희 왕국에 한 명, 미개척지의 전사장 중의 한 명 있어요. 개인의 무력만으로 상위 서열 마왕을 처치할 수 있다고 해요.
서사는 서른 명으로 집계되었어요. 국가마다 적게는 한 명 많게는 아홉 명을 보유하고 있구요. 한때 전략 병기로 큰돈에 거래돼서 당시 인권에 대해 말이 많았다고 하네요. 마왕 사냥 파티의 최소 가입 조건이에요.

위대급 용사는 어지간한 파티의 리더를 맡고 있어요. 대부분 실전배치 중이며 용사 진영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등급이에요. 소환된 용사들의 9할은 위대급이거든요.
고급 희귀 평범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어요. 확인하는 건 어렵지만요. 호호. 저는 고급인력이니까 고급일 거예요!』 …살짝, 속이 쓰렸으나. 괜찮다.
“티나는 경이급이다.” “허어.”
탄식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쥐는 바훔. 그는 내심 무언가의 다짐을 한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곤.
“티나에게 제 이야기를 해도 될런지요?” “그대가 바라는 대로 하라.” 때마침 다 씻었는지 2층 계단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돌리자 줄리가 티나의 팔을 부둥켜안고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머리칼을 잘랐나.” “넵. 입에 계속 머리카락이 들어가서 끝 부분만 조금 잘랐어요.” 티나는 광대 한쪽을 꿈틀거릴 뿐 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 나잇대의 소녀라면 부끄러워하거나 성을 낼 법하건만. 세이프파워볼
“네 이야기를 해 보라.” 모두의 시선에 내 얼굴에 닿았다가 다시 티나에게 향한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결국 말문을 여는 티나.
“제 나이는 스물아홉입니다.” 외형은 영락없이 소녀다. 실제 한줄평에서도 소녀라 언급했고. 나이를 속일 이유가 없을 텐데….
평의 완전히 믿어선 안 되겠어.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마을에 도움이 되고자 스스로 노예가 되었고. 지금껏 후리보나 중개소 관리인의 도움을 받아 잘 숨어 살았습니다.” 숨어 살았다?
“이유는?”
“세상에 나가기 싫었습니다.” 잘랐다고는 하나 아직 눈 근처를 가리는 앞머리를 들어 뒤로 넘기는 티나.

“꺅!”
“으음, 비홀더의 눈! 하프였나.” 세 개의 동공. 다른 것은 사람과 똑같다. 눈 두 개 코 하나, 귀 두 개 입 하나. 오직 동공만이 기형적일 뿐이나 인지하는 순간 인상이 확 달라졌다.
달라지는 게 정상일 것이다.
각기 다른 색상의 동공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는데, 눈을 깜빡이거나 시선이 옮겨질 때마다 축소 확장을 반복한다. 이때 동공에 박힌 하얀 점들이 보석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입술을 움직였다.
“아름답군.”
고가의 미술품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티나의 턱을 잡고 눈을 감상하자 지금껏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소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꺅~”
“어흠, 큼.”
전과 비슷한 탄성이었으나 다른 느낌. 그제야 내가 한 짓을 인지하고 손을 뗐다. 쑥스러웠으나 얼굴로 드러내진 않았다. 자연스럽게 핸들 스틱에 두 손을 올리고 줄리를 불렀다.
“네?”
“계약서를 가져오너라.” 쪼르륵 달려가 카운터 아래의 서랍을 열고 금장식이 된 종이를 가져온 줄리가 내가 앉은 탁자에 계약서를 놓았다. 그러자 바훔이 내 옆에 앉아 항목 하나하나를 설명한다.
“저는 악마의 눈을 가진 하프입니다!” 어리둥절하며 진행되는 상황을 보던 티나가 정신을 차리곤 등 뒤에서 소리쳤다. 오픈홀덤
“관계없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앞에 와서 앉도록.” 일축.
그녀가 그간 겪은 과거. 들어봐야 알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신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로, 생략한다. 티나는 기이한 눈으로 날 보더니 주춤거리며 걸어와 소파에 앉는다.
“용사계약에 대해 얼마나 아나.” “몰라요.”

“바훔. 설명.” “예, 헤일로님. 던전에서 얻은 이익의 9할은 네게, 점수의 9할은 헤일로 님께서 가진다. 그리고 장비와 부산물 처리, 사고보험과 노후는 우리가 책임지지.” 용사 진영에서 제시하는 계약은 보통 5 대 5다. 그런 그들을 밑바닥에서 추월하기 위해선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계약이 필요했다.
“저는 던전에 가는 건가요?” “그래.”
“저는 검을 휘둘러 본 적도 없어요.” 불안해하는 티나의 반응에 바훔이 얼른 끼어들었다.
“가르쳐주마. 너에겐 재능이 있다.” 줄리는 비홀더의 눈을 보고 난 이후부터 티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지만, 바훔은 똑바로 그녀의 눈을 직시한다. 그런 행동에서 신뢰를 받았는지 티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나를 바라본다.
“검 같은 무술은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한다고 들었는데, 괜찮을까요?” “그건 평범한 등급의 용사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바훔이 너는 다르다는 말투로 답하자 티나의 눈빛에 기대가 깃들었다.
“알겠어요. 할게요.” *
나흘이 흘렀다. 바훔의 수련 방식은 단순하다. 검을 쥐여주고 틀린 방향으로 휘두르면 다시 하라는 말을 반복한다. 재능이 없는 자라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수련법이었으나 특성이 검성쯤 되니까 같은 실수를 아예 하지 않는다. 로봇이 단어를 학습하듯, 바훔의 경험과 검술을 흡수하는 티나의 발전속도는 눈이 부실 정도였고 오늘, 하급 던전을 바훔과 함께 다녀왔다.
“어땠나.”
“할만했어요.”
“티나, 너 왜 헤일로 님께만 그렇게 조신하게 굴어?”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이거 봐!”
오크와 크로커다일맨의 체액이 뭍은 겉옷을 벗어서 줄리가 내민 바구니에 담은 티나가 소파에 앉아 신문 기사를 뒤적이는 내게 다가왔다.
“도와드릴까요?” “괜찮다.” 로투스바카라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노예 계약서는 첫날 그녀의 눈앞에서 불태웠다. 당시 티나는 각인된 마법과 반응해 푸르게 발광하는 불길에는 조금도 눈을 주지 않고 내 얼굴만 바라봤었다. 그 시선은 비홀더가 석화 광선을 쏘기 직전의 것과 유사해서 움찔했으나 그간 쌓은 처세술 덕에 간신히 평온을 지켰다.

참고로 천층탑의 하수인 중에도 비홀더가 있다. 14층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가끔 행패 부리는 손님을 석상으로 만들어 가게 입구에 세워두는 취미를 가졌고 김치 볶음밥과 된장찌개를 기가 막히게 한다. 한식이 생각날 때면 들리는 곳이라 비홀더의 외형은 익숙하다.
“훈련장으로 와라.” “예, 스승님.” 두 사제가 훈련장으로 향하고 모집소는 다시 줄리와 나만 남았다. 사각사각, 자료를 살피는 소리만 들리던 때에.


“앗!”
줄리의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찾았어요!”
일전의 바훔처럼 카운터를 휙 넘어온 줄리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제이나파 전원 검거!
제3 수사팀에서 과감한 작전으로 제이나파를 함정에 끌어들여 피해 없이 소탕했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현재 제이나파는 지하 수용소 3층에 수감되었으며 곧 수도로 옮겨질 예정입니다.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한 수사팀에게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소파에 걸어뒀던 정장 상의를 입고 핸들 스틱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서 같이 기사를 읽은 줄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올려다본다. EOS파워볼
“가실 거에요?” “그래.”


“저, 실례지만 헤일로님 약하잖아요. 우리 아저씨 데려가세요.” 줄리는 바훔을 아저씨라 부른다. 본래 찰스라고 불렀는데 그게 가명이라는 걸 나와의 대화에서 눈치채고는 자기에게 본명을 정식으로 알려주기 전까지 그리 부르기로 했단다.
고개를 저었다. 바훔은 안 데려가느니만 못하다. 용사 모집소장이 수용소 근처에 얼씬대면 그간 쌓은 인지도에 타격을 받는다.
“걱정하지 마라. 싸울 일은 없을 터이니.” “…나쁜 놈들이 주먹 들면 그냥 도망치세요. 알았죠? 아무도 욕 안 해요!” 모집소를 나서는 내 등에다 대고 소리치는 줄리. 소녀의 걱정이 달갑기는 하나.
주먹 들면 도망치라니. 피식 웃고는 제이나가 잡혀 있다는 장소로 걸었다. 광장과 중개소를 지나 마을 외곽의 성벽 앞. 3m에 달하는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정문을 두꺼운 철문이었고 양옆으로 망루가 보였다.
나는 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며 혹시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는지 확인했으나 아쉽게도 없었다. 그때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낮임에도 확연히 구분되는 밝은 빛이 나를 비춘다.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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