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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사적단이 내려올 때까지 탑의 존재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다. 알아보니 호수는 대륙 곳곳에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환경이라 각국에서 무장해제, 정보통제, 중립지대, 탐사금지 같은 온갖 제약을 걸었다고 한다. 도착한지도 벌써 두 달이 흘렀는데 모스가 날 찾아오지 않은 걸 보면, 잘 지켜지는 모양. 애초에 이렇게 호수 깊은 곳까지 내려올 수도 없겠지만.
‘그나저나 언제 오려나.’ 내가 사적단을 기다리는 이유는 윙에게서 들은 정보 때문이다.
“세계정복!”
“…거창하군.”
“던전 관리 창에 새로 생긴 탭이 있지?” “영향력?”
“그거 100까지 채우면 난제 클리어야.” “조건은?”
“말했잖아.”
음?
“정복.”
그렇다. 우리가 아는 대륙과 바다를 지배하는 네 개의 세력을 내 휘하에 들이던가 들이받아서 박살 내버리던가 해서 필드에 존재하는 유일한 제국이 되면 영향력이 가득 채워지고 난제가 클리어된다고 한다.
문제는. 로투스바카라
“‘상층에서 내려온 경우 던전주 다섯이 동맹을 맺고, 던전을 하나로 합쳐 영토를 확보해야 건국을 할 수 있다.’고 룰북에 명시되어 있네. 사적단이 내려올 때까지 기반을 다져놔. 지도 같은 것도 만들어 놓고, 다른 세력을 발견하면 첩자도 좀 심고.” “그들이 내려오기까지 얼마나 걸리겠나?” “글쎄, 이곳 시간으로 적어도 두 달은 걸릴 거 같은데. 앗!” “왜?”

“뫼비우스마켓이 3층에서 완전철수한다고 나도 그만 나오라네.” 반가우면서도 아쉬운 소식이다.
“내게 더 알려줄 정보는 없나?” “으음, 선배가 그러는데. 시공의 균열 때문에 변수가 너무 많아서 기존의 정보 대부분은 쓸모없대. 하지만 내 경험상 이럴 때는 은인자중하면서 때를 노리는 게 최고야. 힘을 비축할 수 있을 때까지 비축하고 그때도 애들 안 내려오면, 네 마음대로 해. 죽을 거 같으면 구걸해서라도 살아남-”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윙이 사라졌었다.
그때로부터 두 달이 흐른 지금, 우리는 산호석을 기반으로 한 무기와 도구를 제작한 건 기본이고 다양한 영양분과 미네랄이 가득 함유된 심해수를 끌어와 작물의 성장을 도모.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해구의 흙을 채취해 동식물에 먹이고 뿌리니 그야말로 폭풍성장. 한 치의 모자람도 없는 완벽한 자급자족 환경을 갖췄다. 이로써 탑의 내부 정비와 전쟁물자 확보는 끝난 셈.
‘녀석들이 오기만 하면 되는데.’ *
또 한 달이 흘렀다. 3층에 온 지도 석 달째. 2층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24년 하고도 절반이 넘는 시간.
“아니, 왜 안 와?” 윙이 예상한 시기는 이미 한 달 전에 지났다.
가싯트에게 사적단을 밀어달라고 부탁을 해뒀고, 홀리링은 자기에게 맡겨두라며 대기업 사장님답게 특유의 신뢰 어린 미소를 지었었다. 내가 보유하고 있던 여분의 자원의 9할을 넘겨주기도 했고. 근데 왜 안 올까.
후, 은인자중도 어느 정도지. 세이프파워볼
“이러다 시간만 날리겠어.” “던전주님?”
옆에서 업무를 보던 아들렌이 나의 중얼거림에 의아해하며 이쪽을 본다. 잠깐 그녀와 눈을 마주친 후 뒤에 있는 세계지도로 시야를 옮겼다. 지도상으로 고작 한 뼘 거리. 그곳에 캣츠파이어 제국의 수도가 있다.

“가자.”
“알겠습니다.”
아들렌도 알아챘는지 가타부타 말없이 서류를 정리하곤 자리에서 일어선다. 내게 남은 시간은 앞으로 고작 1년 9개월. 그 안에 세계를 정복하려면 모스에게 들키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 대놓고 전쟁이라는 판을 깔아준 이상 반드시 날 적으로 여길 녀석이기에 지금까지 사려왔으나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날지도 모른다.


수면까지 올라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 처음 우리에게 달려들었던 아귀를 길들여 타고 다니기 때문. 놈의 입속에 들어가면 냄새는 좀 나도 안전하다. 비싼 간이 차단막을 사용하지 않아서 더 좋고.
‘아낄 수 있을 때 아껴야지.’ 하지만 아귀를 타고 가려면 물고기와 의사소통을 해서 말을 듣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해줄 사람은 탑 내에서 한 명밖에 없다.
하여, 항상 그분이 계시는 장소인 98층의 개인 수련실로 이동해 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스승님, 제자입니다.” “금방 나가마.”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승님은 나와 하수인 계약을 맺고 이 탑에 체류하고 있다. 나는 한사코 만류하며 스승과 제자를 위해 마련된 계약을 하자고 주장했으나 그는 ‘평생 하수인으로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고.’라며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수련실의 문이 열리고 화끈한 열기와 함께 스승님이 밖으로 나왔다. 안을 흘낏 보니 하얀 불이 벽면 곳곳에 장식처럼 붙어 있다.
검은 불의 다음 단계, 백화. 무엇도 태우지 않고 오로지 최초에 주어진 마력만으로 영원히 존재해야 완성되는 마법. 저렇게 백화를 꽃으로 형상화해둔 게 또 놀랍고 재밌다. 나로서는 아직 엄두도 못 내고 스승님 자신도 현재 백화가 완성이라 불리기엔 한참 멀었다고 평하였다.
“캣츠파이어 제국에 가려 합니다.” “아귀가 필요하겠구나. 좋다, 제자가 간다는데 스승이 그 정도 노동도 못 할까.” 1층의 입구에 설치된 투명한 관 통로를 따라 탑 밖으로 나온 우리는 차단막의 경계선 앞에 서서 스승님이 마법진을 다 그릴 때까지 기다렸다.
투웅 로투스홀짝
어떻게 호수 밑바닥에 이런 흐름이 발생하는진 모르겠지만 꽤 강한 수류를 타고 저 멀리까지 뻗어 나간다. 그리곤.
꾸이이힝

스승님이 말하길 저 소리는 아이를 낳자고 애태우는 암컷의 욕정이 담긴 포효라고 한다. 눈꺼풀을 세 번이나 깜빡였을까, 저 멀리 호롱불이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리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곤 나와 스승님과 아들렌을 발견하곤 표정이 썩는다. 이젠 물고기의 표정이 구분 갈 정도로 익숙해진 나 자신에게 놀라면서 괜히 녀석에게 미안해졌다.
그러나 스승님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재차 몇 개의 소형 마법진을 그려냈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제자를 보호해서 수면까지 올라가라.’ 정도의 의미.
“아들렌. 그거 줘.” “예, 던전주님.” 아귀가 좋아하는 닭고기를 던져주자 좋다고 냠냠 먹는다. 그리곤 입안에 찌꺼기가 남은 채로 쩍 벌리곤.
꾸우우.
타란다.
찝찝하지만 어쩌겠는가. 편한 이동수단인 것을.
“아들렌, 탑을 잘 부탁한다. 스승님도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돌아오시기 전까지 강군으로 육성 시켜 놓겠습니다.” “허허, 고생하거라.” *
수면으로 올라와 처음 본 것은 일반적인 고양이를 인간의 크기로 늘려놓은 거대 고양이들이었다. 그들은 아귀를 가리키며 눈을 부릅떴고, 통신기기로 생각되는 원형의 작은 구체에 대고 무어라 말한다. 멀어서 들리진 않지만, 아마도 좋은 소리는 아니겠지.
꾸우
아귀는 나를 수면 위에 뱉어내고는 재빠르게 호수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저 아래와 이곳의 압력은 천지 차이다 보니 스승님의 마법진으로 보호받는 사이 돌아가야 했기에 저리 서두르는 것이다.
먀!


아귀가 돌아가도 여전히 날 보며 놀라는 고양이들.
‘말은 통하려나.’ 수영을 해서 해안으로 다가가자 해수욕을 즐기던 세 명의 고양이가 로투스바카라
“헤, 헤일로 황제님?” 잉?
“과인을 아는가?” 먀먓!
“저, 적의 심장을 폐하께!” 세 명의 고양이가 수염을 꽉 움켜쥐며 캣츠파이어식 예를 올린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받아주긴 했으나, 의문이다. 나를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당장 케프가 눈앞에 있다 해도 몇 마디 말이 오가야 할 터인데.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그들에게 연유를 물으려는 순간.
피이잉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삼각형의 비행물체가 제자리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그 기체의 중앙에 푸른색 원이 생기더니 지면을 향해 빛기둥을 쏘았고.
먓!!
“제국의 재상님을 뵙습니다!” 재상이라면.
“케프?”
“예, 폐하. 신 케프 여기 있사옵니다.” 내게 예를 올리고 한쪽 무릎을 꿇는 케프. 녀석은 표면세계의 모습 그대로 기계 고양이의 몸이었다.
“우리, 할 이야기가 많겠어.” “그러하옵니다.” 문득, 나는 저 비행물체가 어쩐지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미스?”
크기에서 극단적인 차이가 나긴 하지만, 외형은 리얼히어로 시절에 범죄자들을 수감해둔 테미스와 닮았다.
“알아보시겠습니까. 송구합니다.” 케프가 죄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엔트리파워볼
“한정된 자원으로는 도저히 테미스급 전함을 제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케프의 이마에 박혀 있어야 할 인피니티 네륨이 보이지 않는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케프는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며.
“인피니티 네륨석과 몸체에 심어둔 기능 대부분을 표면세계에 놓고 간신히 유전자 DNA와 배양설비만 챙겨서 넘어왔습니다.” 묻고 싶은게 산더미 만큼 있다. 하지만 그전에.
“일단 자리를 옮기지.” “성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리로.” 빛기둥을 타고 테미스 레플리카에 탑승. 케프는 함장이 앉는 자리를 내게 양보했는데, 내가 앉기 직전에 방석 하나를 의자와 엉덩이 사이에 밀어 넣는다. 금수실이 달린 내 전용 방석이다. 한 번도 쓰지 않았는지 깨끗하다. 그 모습에 예전, 수정으로서 우주를 여행하던 때가 생각나 픽

“어떻게 넘어왔는가?” “먼저 제 실수를 사죄드리겠습니다. 폐하 전용 기체를 제작할 때 사용되어야 할 청광석이 검은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가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음, 녀석은 잘 있다.” “예?”
케프답지 않게 놀라 의문을 표하기에 찬찬히 2층에서 겪은 일을 풀어놨다.
“그런 일이…, 연이 닿으려면 그렇게도 닿는군요. 이어서 말씀드리자면, 모스 놈의 꼬리짓에 청광석이 넘어간 걸 나중에 깨닫고 서둘러 다시 왕래의 문과 검은 구멍을 열었습니다.” 흥미진진하다.


“청광석을 찾아오는 게 목적인 데다 모스가 ‘헤일로와 연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발언을 하여 모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신성들이 건 제약 때문에 개인의 전력을 최대한 낮춰 들어가야 했습니다. 저 다음으로 자갈밭의 악마, 모스 순이었습니다.” “자갈밭의 악마도 넘어왔나?” “예, 혹 번 플러시 제국이라고 아시는지요.” “안다.”
마족과 악마와 마왕의 국가.
“거기서 ‘디아 그레블로스’라 불리며 왕 노릇을 하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보니 번과 플러시 둘 다 헬스 용어다. 거기다 그레블은 자갈, 디아블로스는 악마를 의미하는 단어. 하나같이 자갈밭의 악마를 암시하는 단어들. 왜 진작 몰랐을까 자책하기보단.
‘이름 잘 지었네.’ 그럴듯한 작명 실력에 감탄했다. 파워볼게임
“거긴 강자존이라고 들었다.” “그러하옵니다. 강자가 독재하는 야만적인 국가입니다만, 모든 집단 중 가장 강한 전력을 보유한 것은 사실입니다.” “상층에서 내려온 던전주들 때문이군.” “그렇습니다.”
긍정한 케프는 아닌 척하면서 내게 기대어린 눈빛을 보낸다.
“나도 던전주다.” “역시!”
케프의 얼굴이 활짝 핀다. 못 본사이에 눈 아래에 녹도 슬고, 고생이 많았나 보네.
“번 플러시는 얼추 알겠고. 인족의 황제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느냐.” “황제 브레이브 칸. 저희가 잘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흐음, 떠오르는 게 없구나.” “이전 난제에서의 용사를 기억하십니까?” “무슨 용사를 말하는 게냐.” 용사가 있었나?
“방패를 부숴서 정령왕을 소환한 남자, 라고 하면 어떠신지요.” 아…, 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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