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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을 향해(4) >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귀여워 보이나 했는데.
이제 보니 <매료> 스킬을 세이프파워볼가지고 있는 특수한 종류의 생명체였나.
그럼 그렇지. 파충류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내가 갑자기 저런 걸 귀여워하게 될 리가 없잖아. 이제 보니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녀석이 지니고 있는 기술이 문제였다.
고작 해봐야 반짝반짝 빛나는 새하얗고 작은 비늘.
용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작고 앙증맞은 날개와 도톰하고 짜리몽땅한 꼬리.
커다랗고 동그랗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전부인데.
매료 스킬이 없었더라면 내가 그런 걸 귀엽다고 느낄 리가 없지. 젠장.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귀찮은 스킬이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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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다. 눈앞의 새끼 천광룡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이성적으로는 녀석이 위험천만한 괴물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해 인상을 쓰며 화를 내고 있는 천광룡 새끼가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뭉툭한 꼬리와 악수를 나누고 싶다. 이건 거의 다현이에 필적하는 귀여움인데.
그러고 보니 연예인 중에도 매료 관련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했던가.
특히 그 중에서도 최상위 매료 스킬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은, 남들보다 훨씬 손쉽게 부와 명예를 손에 거머쥘 수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 보면 이 새끼들 전부 치트 아냐. 본인의 매력이 아니라 스킬을 이용해서 타인의 정신에 영향을 주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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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스가 터져 나온 순간 급하게 몸을 날렸다.
작지만 강렬한 빛이 직선으로 뿜어졌다. 숲이 길게 관통당하면서 긴 통로가 뚫린다. 나무들이 쓰러지고 지형이 변한다. 엄청난 공격력에 등골이 오싹한다. 그래, 역시 너와 나는 적일 뿐. 바닥을 박차고 놈을 향해 대쉬한 후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내 공격을 피하지 않고 입을 벌리는 천광룡.
작고 앙증맞은 이빨로 차원력을 두른 검을 왈칵 깨물고 버틴다.
뭐야, 내 차원검을 이런 식으로 막는다고? 녀석의 이빨에 마력이 이글이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귀여움만으로도 놀라운데 전투력까지 대단하다니. 이러면 더 귀엽······ 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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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녀석의 배에서 피어오르는 무언가의 소리.
설마 이 녀석, 배가 고픈 건가? 주변에 몬스터 사체가 이렇게 많은데 안 주워 먹고 뭐한 거지. 차원검을 회수한 후 녀석과 다시 거리를 벌렸다.
그런데 그 때 무언가가 퍼뜩 떠올랐다. 잠시만? 무한의 가방에서 조리된 고깃덩어리를 꺼내어 녀석의 코앞에 툭 하고 던졌다.
그러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킁킁 냄새를 맡는 새끼용.
잠시 후 흥미를 잃은 듯 홱 하고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런 녀석의 배에서는 계속해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파충류 주제에 고기를 거부하다니. 혹시 채식주의자니? 이번에는 야채를 던져줬다. 역시나 홱 홱 두 번이나 고개를 돌려버린다.

“야 임마.”
[길 잃은 헤일로의 별 : 미친 ㅋㅋㅋ 갑자기 싸우다 말고 뭐해? ㅋㅋㅋㅋ] [황혼에 잠드는 고룡 : 특이점님? 혹시 그 위험한 녀석을 길들이시려는 건가요?] [배부른 귀염뽀짝 : 설마 살살 꼬신 뒤에 기회를 봐서 잡아먹으려는 건 아니지?] [두 얼굴의 여군주 : 어이, 그건 너겠지.] [꺼지지 않는 불의 신봉자 : 아마 그런 먹이는 줘봤자 먹지 않을 겁니다. 아우레스 차원의 천광룡에 관해선 잘 모르겠지만, 심연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마력을 먹고 삽니다.] “마력을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졌다.
곧바로 왼손바닥으로 마력 로투스홀짝 덩어리를 한 움큼 끌어올렸다.
그 어떠한 처리도 거치지 않은 순수한 마력의 덩어리. 그러자 천광룡의 새끼가 목을 쫑긋 세운다. 나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깜박거린다. 입가에 줄줄 침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자, 이리 온 이리 온. 여기 맛있는 마력이 있단다.
그러자 개처럼 뽈뽈 거리면서 다가오는 천광룡. 뭐야 생각보다 엄청나게 온순한 느낌인데. 혹시 내가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다면, 굳이 싸울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 그래. 하긴 이렇게 어린 녀석이 뭘 알겠어.
원래 애들은 부모하기 나름이잖아.
끄으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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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 소리를 내며 의심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천광룡.
살기를 싹 지워버리고 마력 덩어리의 크기를 더 키웠다. 그러자 녀석이 슬금슬금 근처를 맴돌며 눈치를 본다. 살짝 만지려고 오른손을 내밀었더니 움찔 놀라 하악질을 한다. 다시 손을 치우자 스리슬쩍 다가온다. 그렇게 한참만에야 혓바닥으로 마력 덩어리를 핥았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아니, 이건 개야 고양이야. 천광룡이 찹찹 대며 마력을 먹는다.
귀엽다. 여태까지 배가 고파서 더 신경질적이었던 건가. 하긴 알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들은 몸이 마르자마자 음식을 찾는다지. 어쩌면 이 녀석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먹고 싶어?”

“뀨우우우.”
내 말을 알아들은 로투스바카라 건지 묘한 소리를 흘리는 천광룡.
마력 덩어리를 만들어주자 다시 정신없이 구체를 먹기 시작한다. 그 때 오른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녀석의 몸을 어루만졌다. 잠깐 동안 움찔하는 천광룡.
하지만 아까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렇게 계속해서 마력을 공급해주자 좋다고 식사에 몰입했다.
생각보다 너무 온순해서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돈데.
매료 스킬 역시 자신이 의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 같다. 게다가 이곳의 다른 괴물들과는 달리 지능도 꽤나 높은 것 같다.
농담이 아니라 이런 유형의 생명체는 생전 처음이었다. 알에서 깨어날 땐 주변의 모든 것을 미치게 하고, 태어난 이후에는 주변의 모든 것을 매료시키다니.
‘못 죽이겠는데.’
예언자 달리아는 천광룡을 엄청 위험하게 묘사했지만.
아무리 봐도 심연 속에서 산다 뿐이지, 전혀 위험한 생명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녀석을 죽이려던 생각을 포기했다. 무엇보다 지성이 있어서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 그렇게 한참을 먹이를 줬더니 그대로 내 무릎 위에 엎드려 잠을 자기 시작한다.
야 임마, 무거워. 지금 형 다리에 쥐나려고 한다고.
새끼용이 하는 행동을 보니 다현이보단 오히려 차유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쩌지 이걸. 그냥 여기 두고 가는 게 맞나. 괜히 두고 갔다가 앞으로 여기에 도착하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거 아냐? 그렇다고 이렇게 온순하고 귀여운 녀석을 단지 이쪽 사정으로 죽이고 싶진 않은데.
뀨우우?

한참 만에 자리에서 일어서자 잠에서 깨어나는 새끼용.
녀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한 채 나를 바라본다. 등을 돌리고 어디론가 가는 척을 했더니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니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얘는 용이 아니라 개과가 틀림없다. 걸음을 멈추자 녀석도 자리에 멈춘다. 곧바로 움직이니 또 뒤를 아장아장 따라온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는 내내 새끼용이 뒤를 따라왔다.
수풀을 헤치고 십여 분을 이동하다가 한참 만에 뒤를 돌아보았다.
녀석이 여전히 뒤에 서 있다. 손을 내미니까 살살 다가오더니 혓바닥으로 핥는다.
귀엽다. 새끼용에게서 일말의 악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정말로 데리고 가도 되지 않으려나.
“나랑 같이 갈래?”파워볼게임
“뀨? 뀨우우!”
귀엽게 말해도 뭐라는지 못 알아듣겠거든.
아무튼 새끼용이 귀엽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나 오늘 귀엽다는 말을 몇 번째 하는 거냐.
아무튼 그렇게 계층 청소를 마무리 지었다.
“저, 정말로 다 죽었다고?” “그렇게 많은 놈들을 전부 다요?” “저, 정우현씨? 도대체 무슨 수를 쓰신 겁니까?” “기가 막히는군. 일단 근처에 놈들은 정말로 다 죽었어.” 계층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엄청난 양의 괴물.
장막 근처에서 괴물들의 사체를 확인하고 돌아온 각성자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가득 차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수만 마리의 괴물들이 서식하던 80계층. 그런 곳이 통째로 청소가 완료되었으니. 괴물들에게 쩔쩔매던 그들로서는 확실히 기절초풍할 노릇일 것이다.
“놈들을 서로 상잔시키신 겁니까?” “여태까지처럼 말을 낮추셔도 되는데. 그보다 총지휘관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신 거지요?” “괴물들의 사체에 나 있는 상흔을 분석하니까 무기로 낸 상처가 아니더군요. 하나 같이 이빨 자국이나 손톱자국이 가득했습니다. 분명히 자신들끼리 물고 뜯고 미친 듯이 싸운 것처럼 말이죠. 혹시 정우현씨의 고유특성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총지휘관 진이 눈동자를 빛낸다.
뭘 실례가 되게 그런 걸 묻고 그래.
말없이 옅은 웃음만을 내비쳐주었다.
아무튼 이로써 영혼 계약은 완료됐다.
한참동안 감사를 주고받은 후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80계층의 모든 각성자들이 정신없이 자신의 무기와 방어구를 손질한다. 드디어 80계층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여 최후의 선별 퀘스트를 깨러 갈 타이밍이 왔다. 지휘관들의 일사불란한 통솔 하에 모든 작업을 끝나자, 다 같이 장막을 벗어났다.
뀨?

내가 자신을 EOS파워볼 쳐다보자 나를 빤히 쳐다보는 천광룡의 새끼.
녀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얌전했다. 엘린 크로츠와 차유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다현이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내 뒤를 뽈뽈거리면서 잘도 따라다니고 있었다. 어쩌면 다행일수도 있다. 아직은 이 녀석의 안전성이 완벽히 검증되지 않았으니까.
“분명히 이쪽 길입니다.” “정우현씨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로군요.” “80계층의 길은 또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 “괴물들을 정리하면서 중요한 부분들만 파악해뒀거든요.” 당연히 거짓말이고 회귀 이전의 기억 덕분이었다.
뭐 상세하게 설명해 줄 이유는 없지만. 확실한 건 80계층의 각성자들은 생각보다 80계층을 모른다는 점이다. 지난 15년간 지도를 작성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파편에서 태어난 너무나도 강력한 괴물들 때문에 지형을 완벽하게 탐색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마침내 천여명 모두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대한 빛의 무리가 하늘로 퍼져나가더니 선별 퀘스트의 시스템 메시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모두가 커다랗게 환호를 내질렀다.
은근히 뿌듯한 기분인데 이거.
과연 이 중에 몇 명이나 되는 각성자들이 살아서 지구로 돌아올까. 그리고 그렇게 귀환한 사람들은? 전부 우리에게 강력한 우군이 될 것이다.
“아무튼 정말로, 정말로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정우현씨가 분명히 대한민국 출신이라고 하셨지요?”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다시 81계층을 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백퍼센트 진심이오. 지구에서 만나면 최선을 다해서 당신의 일을 돕겠소.” 악수를 나누고 얼싸안으며 모두와 대화를 나눴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81계층으로 향하는 문을 소환하기 시작한다. 파티를 구성하기도 하고, 혼자서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우리들 역시 다른 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최종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드디어 정말로 끝이 났구나.
시련 내에서 내가 해야할 일.
밑그림을 그리는 모든 작업이.
‘이제 귀환만 남았나.’
끝을 향해(4) 끝.
-by 서필(徐筆)
< 끝을 향해(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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