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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네 번째 비밀 이야기:아래아래갱도 던전(23) “여러분, 보이십니까. 저는 아홉 개의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아니, 어떻게. 어떻게 겨우 9만 위 대의 랭커가.” 던전배틀을 중계하던 사회자가 호흡을 고르고 다시 말을 잇는다.
“랭킹 8150위의 카터스트롱 경과 호각을 이룰 수 있습니까!” 녹화해둔 영상에 중계를 덧입힌 영상. 나는 지금 어제의 전투를 복기할 겸 던전배틀 재방송을 보고 있다. 거금을 들여 방의 벽 한 면을 아예 ‘판’화 해둔 보람이 느껴진다. 이 정도로 생생하고 입체적일 줄이야.
달그락.
얼음이 몇 개가 흔들리며 내는 소리를 따라 눈을 돌리니 옆의 탁자에 탄산수가 담긴 잔이 놓인다.
“아들렌.”
“던전주님. 상위 랭커가 매칭을 신청했습니다.” “그래요? 몇 위 던가요.” “7천 위 대의 랭커입니다.” “이번에도 카디블의 엔터와 연관이 있겠죠?” “예. 알아보니 무대설비팀의 총 책임자의 가족이었습니다. 카디블 엔터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상위 랭커가 전투를 걸어오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5만 위 대부터 시작했고 두 달이 지난 현재는 7천 위까지.
‘슬슬 버거운데.’ 실시간파워볼
카터스트롱과의 던전배틀도 중계를 저렇게 드라마틱하게 해서 그렇지, 온갖 야비한 꼼수를 동원해 간신히 쓰러트렸다. 예를 들면 마그누엘라가 제조한 독을 은밀히 뿌린다든가.
[랭킹전 매칭!]

[일주일 내에 던전배틀을 수행하셨으므로 보류 및 거절이 가능합니다.] 8천 위 대의 랭커와 대전, 특히 저 방송이 나간 후에 엄청난 숫자의 매칭 신청이 들어왔다. 거기다 사적으로 접촉해 자기에게 져 달라는 속물적인 요구까지 전달하는 이도 있었다.
“일단 보류하고 내일 생각하죠. 오늘은 쉬어야겠어요.” “알겠습니다. 하수인들에게 그리 공지하겠습니다.” 두 달 사이 벌어들인 수익이 적지 않았기에 중급에서 상급 하수인 뽑기권을 구매했기에 함께 사는 식구가 제법 된다. 공지는 던전주 방에서 알림창이라는 기능으로 해도 되는데, 아들렌이 ‘그래서는 서로 얼굴 볼 일이 없다.’며 만류하곤 자기가 공지하겠다고 자처했다.
“옆 방에 모을 거죠?” “직접 공지하시겠습니까?” “아니요, 간만에 저도 얼굴이나 비출까 해서요. 뒤에서 무게만 잡고 있으려고요.” 아들렌은 이해했다며 묵례를 하고 나가려다, 멈칫하며 다시 돌아온다.
“말씀, 편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만 별개의 존재로 취급받으면 괜한 곳에서 불화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내가 2층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은 아들렌을 고용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들렌의 부지런함과 폭넓은 지식은 마그누엘라도 인정한 바 있다. 암묵적인 이인자로서 군림해도 될 터인데 저리 겸손하고 신중하다.
그런 아들렌의 사소한 부탁 정도야.
“그러지.”
그제야 이상하게 경직되어 있던 아들렌의 표정이 사르르 풀린다.
“한 시간 뒤에 나오시면 딱 맞을 듯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문을 닫고 나가는 아들렌.
시선을 돌려 판을 보자 어느새 중계 파워볼실시간 중이던 던전배틀은 결정타를 먹이고 승리를 쟁취한 나를 클로즈업하며 마무리되고 있었다. 화면 우측 하단에는 30,22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데, 이는 배틀관에서 나와 카터스트롱의 경기를 지켜본 관객의 숫자다. 참고로 배틀관은 권투 선수의 경기를 심판의 입장에서 구경하는 것처럼 원하는 시점, 원하는 방향을 아무 제한 없이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다. 이용금은 100포인트. 최상위 랭커들의 경기는 만 포인트가 넘기도 한다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하여, 내가 카터스트롱과의 결전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수수료 떼고, 상대와 반반 가르면 7555포인트. 약 3시간이 걸린 경기 한 판에 저만큼 번 것이다.

‘구르미 보다 못하네.’ 구르미는 시간당 만 포인트 치의 채집물을 가져온다. 신기하게도 얼마 전에 뽑은 네 명의 채집형 하수인들이 전부 영체형 괴이종이라 효율이 엄청나다. 물리적으로 방해받지 않고 포인트 되는 물건만 포켓에 담으니 수익이 안 좋으려야 안 좋을 수가 없다. 포켓 용량이 적어서 자주 왕래하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아들렌이 말하길 그것도 경험치가 쌓이면 저절로 늘어난다고.
‘하수인들은 소환된 직후엔 본래 자기 능력의 1할도 발휘할 수 없도록 능력에 제한이 걸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지.’ 그게, 1할.
마그누엘라가 첫날에 보여준 지독한 함정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공격팀으로 참가하느라 직접 볼 수는 없었으나 나중에 던전주의 방에서 녹화해둔 영상을 재생하니.
와.
놀들을 잔악한 결말로 몰고 가는 마그누엘라의 트랩도 대단하지만, 독을 사용하는 방법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 독 지배력이, 고작 1할 수준이라는 것에 경악하자 뒤에서 같이 시청하던 아들렌이 짧게 한마디 남겼다.
“그녀는 아군입니다.” 표정관리가 특기인 내가 무심코 미소지었을 정도로 달콤한 말이었다.
“오늘의 중계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면 내일 이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던전배틀은 마무리되었고 광고를 몇 개 보여주더니 음악 방송 프로그램으로 넘어갔다. 소리를 몇 칸 키우고 오늘 아침에 도착한 소파에 등을 푹 기대어 귀를 호강시킬 준비를 끝마쳤다. 파워볼사이트
중독적인 멜로디로 귀에 리듬을 꽂는 보이그룹과 단련된 아름다운 근육을 자랑하는 걸그룹의 무대가 이어진 후,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솔로 가수들의 곡으로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쿵, 쿵, 쿵, 쿵.
무대가 암전되고 단순한 비트가 흐른다. 세 방향에서 쏘아지는 라이트가 무대의 중심을 비추고 그곳엔 품이 넓은 옷을 입은 보랏빛 머리칼의 마족이 여유로운 웃음을 머금은 채 그루브를 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럴듯하게 육체에 웨이브를 주고 있었다는 게 맞다. 그루브야말로 느낌과 박자가 절묘하게 조화된 춤. 홀리링의 박자감으로는 어림없다.
“마지막 무대, 엔터의 대표…. 진짜 이대로 읽나요? 앗, 네. 엔터의 대표님이 회사를 홍보하러 나왔다! 타 엔터와는 차원이 다른 대우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들어보시죠. ‘수익은 9 대 1로.’” [제목 : 수익은 9 대 1로] [작사 : 홀리링]
[작곡 : 홀리링]
[가수 : 홀리링]
진짜였다.
정직한 제목에 솔직한 내용. 1절은 정말 회사의 장점과 복지, 계약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고 2절은 카디블에게 당한 일화를 녹여서 디스로 마무리.
“예, 예! 잘, 잘 들었. 아니. 어. 비트가 매력적인 곡이었습니다. 이상으로- 허억!” 카디블에게 밉보일까 봐 입을 조심하는 게 뻔히 드러나는 초보 사회자가 쩔쩔매다가 어느 순간 깜짝 놀란다.
홀리링이 무대를 내려가고 조명이 전부 켜졌을 때.
[연락해, 866-199-500 가시나무숲 엔터.] 무대 곳곳엔 분홍색 페인트로 엔터 사무실 번호가 적혀 있었다. 황급히 다른 곳을 찍는 카메라로 장면이 옮겨갔고 사회자는 당황하며 멘트를 마무리 지었다.
“하여튼.” 오픈홀덤
행동력 하나는 대단해.
똑똑
“던전주님, 모두 모였습니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나.
“지금 가지.”


다음날.
[랭킹전, 던전배틀을 준비해주십시오.] 카디블의 사주를 받은 7천 번 대의 랭커와의 격전을 앞두고 공격팀 소집 명령을 내렸다.
“총원 3명, 전원 모였습니다.” 전투팀은 나와 아들렌을 포함해 총 다섯 명으로 모두 상급 뽑기권에서 등장한 녀석들이다.
“어이, 던전주님. 오셨소.” 회의실 방문을 밀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굵직한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아볼크. 어이는 빼도록. 던전주님께 예를 갖춰라.” 아들렌의 싸늘한 시선이 트롤 주술사, 아볼크에게 향한다.


“누님. ‘어이’는 남자들 사이에선 친근감의 표시란 말이오.” 아볼크의 주스킬은 마비 효과를 가진 안개를 뿜어내 적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스파크 클라우드 토템’. 미개방 스킬은 ‘트러플 파이어 토템’과 ‘레인 토템’이 있다.
녀석은 곱추처럼 허리를 숙이고는 실없이 웃으며, 나를 올려다본다. 바른 자세로 설 수 있으면서 굳이 저렇게 자세를 낮추는 이유는 적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마법사의 노하우라나. 특이한 녀석이다.
아볼크는 공격팀의 최후방에서 적을 교란하는 역할이다.
“조용. 명상에 방해된다.” “사하임 로투스홀짝 . 그대까지 이러기요.” 눈을 반개한 가고일, 사하임. 그는 범위 공격의 대가로 주력 스킬은 지정 지점에서 서서히 넓어지는 원을 생성한 뒤, 핑거스냅을 하면 푸른 화염이 주먹 모양으로 치솟는 마법을 사용한다. 스킬명은 ‘청염권’. 아직 개방되지 않은 스킬은 ‘화익(火翼)’과 ‘부동’이 있다.
사하임은 팀의 중앙에서 나와 함께 적에게 큰 피해를 주는 역할이다.
“으으.”
아들렌과 사하임, 아볼크 사이에 낀 백색 로브를 입은 소녀. 유일하게 인간인 그녀는 하수인 계약을 한 플레이어다. 이름은 피에나. 주스킬은 ‘광역 치유’이며, 아직 개방되지 않은 능력은 ‘절대 재생’, ‘완벽한 방어벽’

.

팀에서 없어선 안될 회복을 담당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전방에서 활약하는 아들렌 전담 치료사다. 아들렌이 말하길 마그누엘라 다음으로 잠재력이 가장 높은 하수인이라고 내게 조언했었다.
피에나와 계약할 당시, 사후세계로 돌아가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차피 나와 같이 다니다 보면 성공 판정이 되지 않을까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큼.”
헛기침을 하자 시끄럽게 떠들던 이들이 입을 닫고 나를 주시한다.
“금일은 1회의 전투만 예정되어 있다.” “오오!”
그날 정한 던전배틀을 모두 끝나면, 따로 임무를 부여하진 않기에 저들에게는 자유시간이다. 그 시간에 사하임은 명상이나 수련, 아볼크는 흡마목 연구, 피에나는 부업을 수주해 소소하게 포인트를 번다.
“상대는 카터스트롱 때와 같이 카디블의 후원을 받은 상대다.” 세 사람의 표정이 굳는다. 그 중에도 피에나가 아주 사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카터스트롱과 붙으면서 사하임은 하반신, 아들렌은 양팔과 눈을 잃었고 아볼크는 목만 간신히 남겼다. 종족특징과 피에나의 치유 덕에 간신히 살아 있는 셈.
어떻게든 숨만 붙어서 돌아오면, 던전의 기능 중 하나인 ‘회복의 샘’에서 육체를 전부 재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강적을 상대로 그렇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기에 피에나가 저리 사색이다. 9만 위 대의 우리가 7천 위 대의 랭커와 배틀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하다. 로투스바카라
“크흐, 빡세겠소. 영화 한 편 찍고 오겠구먼.” “쇠는 정을 맞아야 단단해지는 법. 이 또한 수련일지니.” “저, 저도 힘낼게요.”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또 한 번의 예고된 결전에 앞서 견고하게 의지를 세웠다.
[공격팀은 매칭된 상대의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방어팀은 곧 도착할 상대에게서 던전의 핵을 지켜주세요.] 3, 2, 1.
[던전배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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