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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세 번째 이야기 : 위기를 맞은 고블린 마을(6) 모래거인이 이번에는 도끼의 옆면으로 나를 후려갈긴다. 터져나가는 육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초목에 들러붙어 흘러내리던 파편들이 녹색의 기체로 변해 내게 흘러와 본래의 형태로 재생한다.
[초회 한정, 스킬 효력 증폭 중] ‘신기하네.’
개미가 길을 가다 만난 인간의 발을 치우려고 제 체중의 수십 배에 달하는 힘으로 밀지만, 우리는 그런 힘이 발생하고 있는지 자각조차 못 하는 것처럼. 기사의 공격도 내게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무적처럼 보이던 저 기사단장의 약점도 눈에 들어온다.


모래거인의 정강이에 흐르는 모래의 속도가 다른 곳보다 느리다.
나를 강타하고 지면에 틀어박힌 모래도끼가 서서히 들 세이프파워볼리자 탄성 좋은 고무처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몸. 내게 닿았던 모래가 기사의 통제를 잃고 부스스 떨어진다.
도끼를 회수하려는 모래거인의 품 안으로 뛰어들며 스킬을 사용.
‘애시드 휠.’
드르륵
나의 전신에서 튀어나온 성인 남성 크기의 수레바퀴가 구른다. 바퀴의 면에 닿는 모래를 분해하며 거인의 팔등을 내달린다. 제어도 되나 싶어 애시드 휠에 의식을 집중하고 좌우로 흔들어보니.


‘옳거니. 움직인다.’ 팔등을 질주하던 애시드 휠을 제어해 겨드랑이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 정강이에서 폭발시켰다. 퍼석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에 닿은 부위의 모래가 검은색으로 변해 땅으로 흘러내린다. 순식간에 무릎까지 번진 검은 모래에 거인은 도끼로 자신의 자리를 잘라낸다.

“강력한 산성이군. 인정하지. 네놈은 우리가 사냥한 흑마도사 중에도 가장 위험한 놈이다.” “흑마도사 아니라니까.” “구차한 변명으로 이 자리에서 살아갈 생각은 버려라. 너 같은 자가 그런 힘을 가진 것만으로도 대륙의 재앙. 결코 좌시할 수 없다.” ‘말이 안 통하네.’ “그러다 내가 이기면 어쩌려고.” “팩토님의 성권과 대지가 나를 수호하는 한 패배는 없다!” 그 말 대로 모래거인의 다리는 지면의 흙을 흡수해 재생되었다. 다만.


‘느려졌어. 전신에 흐르는 모래의 속도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재생에 한계가 있는 거야. 그렇다면 돌파구는 하나. 물량.’ 애시드 휠을 생성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0.3초 남짓. 대략 초당 3개의 휠을 생성할 수 있다. 먼저 나를 둘러싼 8개의 모래창부터 제거.
하나의 애시드 휠을 모래거인의 사타구니로 굴러가도록 지정해두고 슬그머니 내 후방으로 모여 합쳐지던 모래창을 두 개의 애시드 휠로 격추.
여기까지 1초.
모래거인이 측면으로 물러서며 모래로 이루어진 세이프게임 벽을 생성해 자신의 몸을 가리면서 애시드 휠을 막아낸다. 그동안 나는 총 여섯 개의 애시드 휠을 생성. 언제든지 내보낼 준비를 완료.
지면에서 주먹 모양의 모래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 하늘로 비산. 상공 10m쯤 올라갔을 때 형태를 잃고 단순한 모래가 되어 쏟아졌다.
쏴아아-
모래비.
모래와 지면의 마찰로 일어난 먼지구름이 시야를 가리기가 무섭게 측면에서 거대한 질량의 무언가가 대기를 찢으며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끼!’
1m 앞도 보이지 않는 먼지구름을 뚫고 지척에 다가온 양날도끼에 정신이 팔려있다가 문득 발목에 끈적이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내려 확인하니.
‘진흙 촉수.’
진흙은 모래와 달리 표면이 끓어오를 뿐 흩어지지 않았다. 의지만 있으면 발목을 끊는 건 쉬운 일. 금방 기체로 화해 내 몸에 합류할 테니 손해도 없다. 즉, 이 속박과 공격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렇기에 피하지 않는다.


비산하는 푸딩조각들, 이번에는 의식하고 있어서인지 어딘가에 닿기도 전에 기체로 화해 내 몸으로 흡수된다.
“한 번이 안 된다면. 두 번.” 지면에서 솟구치는 거대 랜스가 내 몸통을 관통. 랜스는 검은 모래로 변하며 사라지긴 했으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허나 당연하다는 듯이 재생해 본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두 번이 안 되면, 세 번.” 양쪽에서 날아온 모래주먹이 나를 짜부로 만들어 터트린다. 마찬가지로 재생. 이번에는 기사단장이 할 말을 내가 가로챘다.
“세 번도 안 되면?” 기사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하반신이 지면으로 빨려들었으며 이윽고 전신이 지면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귓가에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봉인이다. 흑마도사.” 주변의 흙이 질척한 수분을 머금은 흙으로 변했고 이내 내 몸과 뒤섞이기 시작한다.
“아트락스. 너는 착각하고 있다.” “자신이 흑마도사가 아님을 부정하려거든 그만두어라. 이제 와서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여기까지 35초.


꾹꾹 눌러 내 몸에 가두어둔 애시드 휠의 수는 총 116개. 100개가 한계였는지 그 이상으로 넘어가자 육체의 형태가 변했다. 회심의 수를 준비한다 오픈홀덤 는 것을 들킬까 노심초사하였으나 지면 아래로 들어올 때 몸이 뭉개지는 척하며 숨겼다.
“그러냐.”
내 몸을 타고 고속으로 구르는 열 개의 애시드 휠이 진흙을 태워 공간을 만든다. 기사단장은 이미 지상으로 나갔는지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드릴처럼 변형시킨 나는 애시드 휠과 함께 지상까지 이어진 물컹한 벽을 돌파해나갔고 1분여를 올라가자 마침내 빛을 볼 수 있었다. 추진력을 주체하지 못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아래에는 모래로 간신히 외피를 두른 기사단장이 부릅뜬 눈으로 나를 돌아본다.
지면으로 올라오느라 소모한 애시드 휠의 수는 총 36개.
드르륵 드르르륵

매캐한 녹연을 뿜는 80개의 바퀴가 나뭇가지와 지면을 박차고 기사단장을 향해 최단 거리로 구른다.
“크으으!”
기사단장을 감싸던 모래는 물론이고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지경의 육신이 그곳에 있었다. 심지어 애시드 휠은 자아라도 가졌는지, 기사단장이 무력화되자 공격을 중단하고 그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구른다.
“크륵, 그르르!” 성대가 녹아 뭐라 말하는지 알 수 없게 된 기사를 내려다보자 놈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어라 소리쳤다. 그러자 땅으로 돌아가던 모래가 수백 개의 송곳으로 변해 전면을 점하고 찔러왔다. 나는 무시하고 앞으로 걸었다. 내 몸을 관통한 모래가 등을 뚫고 나왔을 땐 재가되어 흩날렸다.
“당황스럽겠지.”
기사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공주를 살려주면 내게 무얼 해줄 수 있나.” 기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죽었으면 눈꺼풀도 움직이지 못할 터. 명백한 거절 의사다.
책 제목이 뭐였더라. 하여튼 ‘살다 보면 범람하는 인간관계에 허덕일 때가 많다. 그중에는 반드시 내게 도움이 되는 촉매가 존재하니 힘들다 하여 대인관계를 포기하지 말고 소중하게 이어가라.’는 자기계발서를 본 기억이 난다.
적이었지만, 이 네임드가 내게 있어 촉매다.
벽으로 나타난 기사 덕에 20년이 허송세월 되지 않았다. 그런 기사에게 나는 감사의 의미를 담아 진한 바디슬램을 먹였고 그는 붉은 젤리처럼 변했다.
“끝났다.”

나무 둥치에 앉을 생각이었는데 녹아버렸다. 잡초가 타거나 말거나 드러누워 숨을 돌리길 십여 분. 동굴에서 콜록거리고 있을 게락이 떠올랐다.
‘포션을 챙겨야 해.’ 기사와 고블린의 시체를 모아 태우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애시드 바디 상태에서 본래의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아 몇 번이고 들고 나르던 시체를 놓쳤기 때문. 스킬을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간신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쓸모 있는 건 모조리 내 오두막으로 옮긴 후, 게락을 찾았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게락이 클클대며 웃는다. 로투스홀짝
“피 냄새가 난다. 또 애들이 까불더냐.” 게락이 말하는 애들은 청년단이다. 최근 녀석들을 가르친다고 훈련을 엄하게 해서 피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지 뭐. 마실 거 하나 가져왔어요.” “그런 건 네가 먹지 뭣 하러 가져왔느냐.” 그러면서도 내 엄지와 검지 사이에 병목이 잡혀 흔들리는 붉은 물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또 있으니까, 아버지가 다 마셔.” 상체만 일으킨 상태로 단번에 마셔버리는 게락.
“으음, 어지럽구나. 술이냐? 이놈이 아비를 일찍 보내려고 작정을 했구나. 네놈에게 줄 재산은 없는 줄 알아!” “약술입니다, 약술. 그리고 재산은 뭔데요, 저 팬티를 말하는 건 아니죠?’ “크음, 늙어서 그런지 몸이 따듯해지니 졸립구나.” 게슴츠레한 내 눈을 피해 몸을 뒤척인 게락. 그의 호흡이 규칙적으로 변하는 것까지 지켜보다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발을 소리 나지 않게 내리고 밖으로 나왔다.
토벌대가 오기까지 약 2주.
‘할 일이 많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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